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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신의 달력 by 장용민 예전에 소설 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꽝이었지만, 저 제목이 조금 유명해진 건 영화의 덕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시나리오로 먼저 시작이 되었고, 영화화가 된 이후에야 소설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팩션(Faction)'이란 장르가 원래 한국에선 빛을 발하기가 원래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양의 역사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교의 역사이고, 유일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수천 년도 넘게 이어졌다. 그런 만큼 그 믿음이 흔들릴 만한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거나, 아니면 그런 유일신을 과학적으로 검증(최근 미국산 팩션에서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보인다)하려고 하는 일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모든 민족 구성원이 .. 더보기
B컷 by 최혁곤: 아쉬운 여성 킬러 '여성 킬러'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영화건 소설이건 꼭 챙겨 보려고 하는 편이다. 여기 에서도 여성 킬러가 나온다길래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무조건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골랐다. 그런데 솔직히 아쉽긴 하다. '니키타'처럼 완벽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개인의 트라우마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캐릭터를 예상했건만 여기선 그냥 수박 겉핥기에 머문 느낌. 딱히 그 킬러가 여성이어야만 하는 당위성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킬러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 대신 특정한 사건 하나를 두고 킬러와 전직 형사(이며 현재는 흥신소에서 간신히 밥 먹고 사는 탐정)의 시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교차하는 특이한 구성을 취한 이 소설에서 둘 사이의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킬러를 여성으로 설정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 더보기
세계대전 Z: by 맥스 브룩스 본 포스팅은 맥스 브룩스 저 '세계대전 Z(World War Z)'의 리뷰입니다. 좀비들이 갑자기 세상에 출몰한 이후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다룬 원작소설의 분위기에 맞춰서, 좀비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대항하는 전쟁이 전세계적인 규모로 터지며, 이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해외의 종군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작성합니다. 대한민국, 서울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만 아니라면, 그의 외모는 동안에 속했다(그는 30대 후반이라고 했다). 체격도 그리 큰 편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한국의 중년 남성처럼 보이긴 했지만 가늘게 뜬 눈매 너머로 수백만의 좀비들이 창궐하고 있는 모진 풍파를 몸으로 겪은 비장함도 엿보였다. 인터뷰는 좀비전쟁 이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서쪽 외곽에 위치한 아파트.. 더보기
네 권의 책에 관한 이야기 지난 주에 가까이 사는 친구를 만나 대대적으로 책을 서로 빌려주고 빌리는 작업(시립도서관에 가는 것조차 귀찮아질 때 종종 이렇게 하는데 이게 은근히 재미있다)을 해서, 당분간은 읽을 책이 많아 행복했다. 그렇게 해서 얼마 전까지 고스트 라이터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었는데, 빌린 책들 전부가 그리 심각하게 읽을 필요가 없는 소설들이고 워낙 책을 빨리 읽는 축에 속하다 보니 벌써 밑천이 보인다. 국내판은 마땅한 이미지가 없어 해외판 이미지를 쓴다. 국내에서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이란 야릇한 제목으로 탈바꿈한 헨리 슬레서의 '회색 플란넬 수의'(The Grey Flannel Shroud). 분량도 적고 책의 판형도 작아서(;;) 금방 다 읽었으니 이제 리뷰만 남았다. 스릴러 장르이며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 더보기
공중그네 by 오쿠다 히데오 하얀 백지 위에, 까만 색의 문자들. 어떻게 그것만으로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한편으로 가슴 설레이게도 만들까. 이렇게 보면 작가는 참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구체적인 광경을 커다란 스크린에 펼치는 영화와는 다른, 활자화된 대상이 행간을 넘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글을 참 잘 쓴다'는 건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보면서 그 먹먹함에 눈시울이 뜨거웠고,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보면서 그 공포감에 심장이 오그라들었으며,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자칼의 날'을 보면서 그 박진감에 손바닥에서 절로 스며드는 땀을 느꼈던 나는, 이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보면서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뿜었다'. 무진장 웃기는.. 더보기
눈먼 자들의 도시, 원작 그리고 영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작품을 본 건, 학교 때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보고 난 이후 처음인 것 같다(솔직히 내 취향은 한림원의 그것과는 한참 멀다). 물론 꼭 노벨 문학상이 아니더라도 포르투갈 출신의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는, 그리고 그의 작품은 워낙 유명세를 떨쳤기에 언젠가는 한번 봐야지 내심 점 찍고 있다가, 이제서야 봤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별 연관은 없어 보이는, 남미 환상문학의 정수 보르헤스나 마르케스의 과감한 설정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그러나 그 행간으로부터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과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렇게 고리타분한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실이 그렇다)을 읽을 수 있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이 실명을 한다. 심지.. 더보기
영화처럼 by 가네시로 가즈키 가네시로 가즈키라는 작가를,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재일동포'라는 분류에 넣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마치 그의 작품 'GO'에 나왔던 것처럼 조총련계 출신이니까(나름 독실한 맑시스트 출신인 그의 아버지 덕택이라고 한다). 구획 짓기에 익숙한 우리의(동시에, 일본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그렇게 평생토록 불안하게 외줄을 타는(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더욱 도드라졌고,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상황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GO'와 다른 그의 작품들, 그러니까 '레볼루션 No.3', 그리고 연이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 '연애소설' 이후 꼭꼭 숨었.. 더보기
SF 느와르, 다이디타운(Dydee Town): by 폴 윌슨 '다이디타운', 흥미로운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지난 번에 포스팅했던 '라스 만차스 통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오리지널리티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전에 어디선가 본 구석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 처음 4페이지를 보고 난 느낌: 이건,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 첫 장(Chapter)을 보고 난 느낌: 완전 레이몬드 챈들런데? - 두 번째 장(Chapter)을 보고 난 느낌: 이런, 이건 순진한 존 그리샴이야 - 끝까지 다 보고 난 느낌: 킥킥, 이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열라 깨는 SF 아일랜드아냐 다이디타운의 주인공 시그문드는 사립탐정이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선 다른 많은 작품에서 너무너무너무 익숙한 온갖 '꺼리'들.. 더보기
라스 만차스 통신: 이게 진짜 판타지 우선, 인상적인 일러스트로 책 전체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꽁꽁 싸맨(?) 이 독특한 표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책을 다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 몇 가지를 주루룩 늘어놓으려 한다. (책 표지의 서평에도 나왔지만)카프카, 에도가와 란포(혹은 '진짜' 에드가 앨런 포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H.P.러브크래프트(아주 살짝), 어슐러 르 귄(역시 아주 살짝), 그리고 고독, 지독한 암울함, 용인할 수 없는 범죄, 타락, 사악함, 기타 등등. 그렇게, 분명히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론 굉장히 독특하고 때로 공포스럽기도 하며 어쨌든 파격적인 작품이다. 작가인 히라야마 미즈호는 멀쩡한 직장에 다니면서 10년 넘게 소설을 계속 썼다고 하고, 이 '라스 만.. 더보기
동서미스테리북스 몇 권 이하의 포스팅 역시 이전 블로그에서 살포시 가져온 내용. --------------------------------------------------------------------------------- 지난 여름에 필리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거길 가기 전에 책 몇 권을 구입했다. 가뜩이나 더운 나라에 그것도 휴양을 하러 가는데 머리 복잡한 책 본다고 해봐야 몇 페이지 못 넘길 것 같아서 '가볍고' '저렴한' 책을 몇 권 사서 갔는데 제대로 보진 못했다. 어쨌든, 그 책들 중 몇 권은 바로 '동서미스테리북스' 시리즈였다. 지금의 동서미스테리북스 시리즈는, 주로 추리나 스릴러, 하드 보일드 등 가벼운 페이퍼백들인데 하여튼 옛날 고리짝에 대부분 중역을 거쳐 나왔던 책들이 재판을 거쳐서 나온 버전(?)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