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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컷 by 최혁곤: 아쉬운 여성 킬러





'여성 킬러'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영화건 소설이건 꼭 챙겨 보려고 하는 편이다. 여기 <B컷>에서도 여성 킬러가 나온다길래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무조건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골랐다.

그런데 솔직히 아쉽긴 하다. '니키타'처럼 완벽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개인의 트라우마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캐릭터를 예상했건만 여기선 그냥 수박 겉핥기에 머문 느낌. 딱히 그 킬러가 여성이어야만 하는 당위성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게다가 킬러로서의 업무 수행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다.

대신 특정한 사건 하나를 두고 킬러와 전직 형사(이며 현재는 흥신소에서 간신히 밥 먹고 사는 탐정)의 시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교차하는 특이한 구성을 취한 이 소설에서 둘 사이의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킬러를 여성으로 설정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책 말미에 모 작가가 '스릴러는 추리소설의 하위 장르'라는 식으로, 어려운 동양철학까지 끄집어내면서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그건 뭐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추리소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하게 되는 게 대부분 '치밀한 논리로 누가 범인인지(대부분 살인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과정'이 아닌가.

<B컷>은 그런 정통 추리물과는 별 관계가 없다. 묘사도 그렇고 작품 내의 상황도 하드보일드 스릴러를 생각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생각나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고딩 때 빠졌던 김성종. 다른 친구들이 자율학습시간과 심지어 수업시간 중에 무협지를 많이 읽었는데 그 때 나는 김성종의 <제5열>과 <Z의 비밀>, <경부선 특급 살인사건>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으니.

사건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인간 수명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의학적 신기술은 현실적으로 별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무엇보다 작품의 배경이 아주 친숙한 공간들이고 막판엔 나름의 반전도 준비되어 있다. 또한 어지간한 육두문자(조지 펠레카노스의 작품들은 번역을 거친 것이긴 하지만 원본을 보면 그 수위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를 포함해서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매력적.

모든 문학 작품은 그 작품이 속한 사회를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장르는 몰라도 적어도 SF, 호러, 하드보일드 쪽에선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작품이 나와야 한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이 현실이 얼마나 SF적이고 공포스러우며 하드보일드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