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라스 만차스 통신: 이게 진짜 판타지



우선, 인상적인 일러스트로 책 전체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꽁꽁 싸맨(?) 이 독특한 표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책을 다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 몇 가지를 주루룩 늘어놓으려 한다.

(책 표지의 서평에도 나왔지만)카프카, 에도가와 란포(혹은 '진짜' 에드가 앨런 포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H.P.러브크래프트(아주 살짝), 어슐러 르 귄(역시 아주 살짝), 그리고 고독, 지독한 암울함, 용인할 수 없는 범죄, 타락, 사악함, 기타 등등.

그렇게, 분명히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론 굉장히 독특하고 때로 공포스럽기도 하며 어쨌든 파격적인 작품이다. 작가인 히라야마 미즈호는 멀쩡한 직장에 다니면서 10년 넘게 소설을 계속 썼다고 하고, 이 '라스 만차스 통신'으로 데뷔했다고 한다. 작품만 놓고 보면 굉장히 '아스트랄한' 정신 세계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어찌 멀쩡한 직장에 멀쩡하게 다닐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묘사만 놓고 보자면 인간은 분명 아닌, 그렇지만 한 가족(?)인 괴생물체가 나오는가 하면 1년 365일 화산재로 뒤덮이는 도시가 나오고, 살아있는 사람을 누에고치로 만들어 몇 년 동안 피를 빨아먹는 '그것들'이 나오며 식인을 하는 생명체와 예술혼을 위해 역시 살아있는 사람을 식물로 만들어버리는 광경까지 목도하게 되면 도대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져서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판타지 문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금강불괴지체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뭔가 무협지 비스무리한 내용이나 엘프, 난쟁이, 법사 등이 파티를 이뤄야만 하는(?) 북유럽 신화만이 연상된다면, 바로 지금 라스 만차스 통신을 읽어야 한다(고 본다). 굉장히 낯선 몽롱한 감각, 쉽게 만날 수 없는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