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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공중그네 by 오쿠다 히데오



하얀 백지 위에, 까만 색의 문자들. 어떻게 그것만으로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한편으로 가슴 설레이게도 만들까. 이렇게 보면 작가는 참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구체적인 광경을 커다란 스크린에 펼치는 영화와는 다른, 활자화된 대상이 행간을 넘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글을 참 잘 쓴다'는 건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보면서 그 먹먹함에 눈시울이 뜨거웠고,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보면서 그 공포감에 심장이 오그라들었으며,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자칼의 날'을 보면서 그 박진감에 손바닥에서 절로 스며드는 땀을 느꼈던 나는,

이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보면서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뿜었다'.

무진장 웃기는 작품이다. 늦은 퇴근 시간, 승객이 드문드문 앉은 광역버스 안에서 이거 붙잡고 끽끽대고 웃고 있으니 사방에서 쏟아지는 이상한 눈초리(-_-)를 느끼게 해줬다.

매우 생경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 정말 뜬금없는 말빨의 속사포로 어이없게 공격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꼭 일본산 소품 코미디 영화/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인데 중요한 건 하여튼 배꼽을 쥐게 만든다는 것.

끄트머리가 뾰족한 물건만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야쿠자 중간 보스,

허공에 매달린 그네에서의 연기가 더 이상 안 되는 베테랑 서커스 단원,

저명한 의사인 장인의 가발만 보면 그걸 벗기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빠지는 의사,

평범한 내야 땅볼을 잡아 1루로 송구하지 못하는 올스타 출신 프로야구 스타,

자기가 쓴 작품만 생각하면 구토 증세가 밀려오는 유명 여류 소설가,

이렇게 나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 우리의 주인공인 유쾌한(짜증나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 박사를 찾아온다. 그의 처방은 항상 똑같다. 닥치고 주사. 주사? 그렇다. 뾰족한 바늘로 찌르는 바로 그 주사. 특히 첫 에피소드에서, 바늘이라면 질색을 하는 야쿠자에게 세 번에 걸쳐 주사를 놓는 장면은 그야말로 포복절도.

워낙 좁은 땅에서 많은 인구가 북적거리면서 사는 일본이 아닐지라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정신적인 문제는 심리적인 외상에서 온다는 것이 거의 통설인데, 그렇게 두려운 대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힘들다면 만사 제쳐놓고 유쾌하게 웃어보는 건 어떨까.

안 그래도 가뜩이나 힘든 일이 많은 요즘, 오쿠다 히데오의 이 가벼운(이 표현은 작품을 폄하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소품이 담백하면서도 유쾌하면서도 하여튼 골 때리는(?!) 재미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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