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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Z: by 맥스 브룩스



본 포스팅은 맥스 브룩스 저 '세계대전 Z(World War Z)'의 리뷰입니다. 좀비들이 갑자기 세상에 출몰한 이후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다룬 원작소설의 분위기에 맞춰서, 좀비들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대항하는 전쟁이 전세계적인 규모로 터지며, 이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온 해외의 종군기자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작성합니다.






대한민국, 서울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만 아니라면, 그의 외모는 동안에 속했다(그는 30대 후반이라고 했다). 체격도 그리 큰 편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한국의 중년 남성처럼 보이긴 했지만 가늘게 뜬 눈매 너머로 수백만의 좀비들이 창궐하고 있는 모진 풍파를 몸으로 겪은 비장함도 엿보였다. 인터뷰는 좀비전쟁 이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서쪽 외곽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좀비전쟁 전에 그 아파트 단지는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한다) 옥상에서 진행되었다. 현재 이 아파트는 좀비전쟁의 전초 기지이자 캠프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M-16 소총을 아무렇게나 땅에 내려놓고, 담벼락에 기대 앉으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담배 피우십니까?

(그가 담배갑을 나에게로 향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는 담배갑을 상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할까요... 그래요. 이거부터 하는 게 좋겠네요. 선생도 당연히 보셨겠지만, '세계대전 Z'라는 소설요. 지금 좀비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그 빌어 처먹을 놈들이 걸어다니기 훨씬 전에 전 그 소설을 봤습니다. 꽤 재미있었죠. 음, 지금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 땐 재미있었어요.


좀비가 나오는 영화도 많이 봤죠. 리빙 데드 시리즈. 그건 진짜 명작이죠. 후에 나온 몇몇 영화들은 쓰레기였지만... 특히 '나는 전설이다', 아시죠?

영화요? 아니면 소설이요?

당연히 소설 말하는 거죠. 보셨나요?

봤습니다.

네. 제가 그 작품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피식 웃으며)근데 전쟁 전에 봤던 영화는 완전 허접이더군요. 레프트 4 데드 같이 좀비가 나오는 게임도... 아, 제가 전쟁 전에는 소설, 영화, 게임 같은 거 보고, 해보고 글을 쓰는... 영어로 뭐라고 해야 하나. 아, 칼럼니스트 일을 했거든요. 그러던 제가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죠.

아시겠지만,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은 20대 초반에 약 2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대에서 복무합니다. 그래서 저런(자신의 M-16 소총을 가리키며) 물건을 다루는 것에도 익숙하죠. 물론 저 놈은 20년도 넘은 물건이예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다뤘던 놈이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의 사정은 서방 세계에 그리 자세하게 알려지진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떤가요?

처음 시작은,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제 고향인 인천과, 한국 최대의 항구도시 부산에서 이 몹쓸 역병이 시작되었죠. 그게 무슨 말인진 아시죠? 남한은, 동쪽과 서쪽과 남쪽이 바다고 북쪽은 철조망(다시 그는 휴전선이라고 고쳐 말했다)이 막고 있어서 사실상 섬이나 마찬가집니다. 감염자들이 외부로부터 들어왔다는 거죠.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건 아니고요.

그런데 이 한국이란 나라는, 수도 서울과, 서울을 중심으로 메트로가 깔린 좁은 지역에 전 인구의 1/4 넘게 살고 있습니다. 도쿄보다, 파리보다, 뉴욕보다 인구밀도가 높죠. 그런 만큼 썩은 시체 놈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구요.

서울 이야기를 더 해보면, 서울은 중심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이 있습니다. 런던의 템즈강이나 파리의 세느강과는 달리, 이 강은 거대 도시 서울을 정확히 남북으로 가르고 있죠. 여기에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해볼까요? 이 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다소 개인적인 성향의 신흥 부유층이 많이 모여 살고, 북쪽은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떨어지지만 주로 정치적인 내용의 대규모 군중 집회가 많이 벌어졌죠. 자, 그 빌어먹을 좀비 역병이 퍼지는 속도가 어느 쪽이 빨랐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대규모 군중 집회가 많았던 북쪽이...

(웃으며)기자분이라 상상력은 부족하신 편이군요. 아, 죄송합니다. 힐난하려고 그런 건 아니니까요. 좀비가 퍼지는 속도는 남쪽이 빨랐습니다. 최초 발병 사례가 보고된 후 남쪽 지역은 보름 만에 약 70%가 접수된 반면, 북쪽 지역은 한 달이 지나서야 절반 정도가 '적색지대'로 분류됐죠.

말 하기를 좋아하는, 다소 수다스러운 사람들은 주민들의 성향 때문이라고들 합디다. 남쪽 주민들은 다소 개인적이고 고집이 세서 흘러다니는 정보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던 반면, 북쪽의 주민들은 어려울 때 서로 도우는 일에 익숙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지정학적 요인이 더 컸다고 봐요. 남쪽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최근에 이뤄져서 각종 건물, 주택, 상가 등이 꽤 촘촘하게 세워졌지만 북쪽은 남쪽보다는 덜하죠. 게다가 북쪽에는 꽤 험한 산지가 분포해서 그곳으로 들어가 얼마간을 버티는 사람들이 많았고(여기까지 이야기하고 그는 새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은 다른 선진 국가들에 비해 좀비의 확산도 더딘 편이고, 그만큼 시민들이 이런 미증유의 사태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해외에서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전쟁이나 대규모 군중 시위 같은 상황에 대단히 이성적으로 대처합니다. 경험도 많죠.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는 큰 전쟁을 겪었고, 우리 젊은 세대는 맨손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일궜죠. 물론 댓가도 크게 치뤘습니다만, 하여튼 이런 집단적인 재난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서로 단합하는 힘이 강하고, 미국이나 유럽 시민들보다 비교적 냉철하게 사태를 수습하죠.

앞에서 한국 남자들 대부분은 군 복무 경험이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현역병들은 좀비와의 전쟁에서 생각보다 큰 전과를 올리진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놈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맞닥뜨렸던 그 어떤 적과도 다르죠. 교범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적입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공포심 같은 것도 없습니다. 아예 생각이란 게 없는 놈들이니까요. 오히려 저 같은 베테랑(예비군)들이 좀비놈들을 더 잘 때려잡았죠. 생각해보세요. 한국도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제 또래 같은 20대에서 40대 남성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죠. 그런 점에서,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제대로 된 화풀이 대상을 만났다고나 할까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씁슬한 웃음을 지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직장을 잃은 사람들. 이 사람들의 불만이...(한숨)

그리고 지금의 전세계적인 좀비와의 전쟁 국면에서 한국이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것은, 발달된 한국의 인터넷 환경도 한 몫을 담당했죠. 국내에서 최초 감염 사례를 가장 먼저 속보로 전한 데가 신문일까요? 아니면 TV 방송일까요? 천만에, 그냥 평범한 블로거였습니다.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최초 발병 사례와 함께, 좀비를 만났을 때의 대처 요령과 특정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가장 안전한 루트 등은 아직 네트워크 라인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서버 중계국을 거쳐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었습니다. 물론 쓰레기 같은 정보도 간혹 있었고 한국 모든 지역에서 유선이든 무선이든 인터넷 접속이 원활한 것만은 아니지만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동료 쪽을 바라보며 한국말로 이야기했다(잠시 뒤 그는 "보초 교대 시간이 되었는지 물어봤다"고 이야기했다).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투박한 군화로 비벼 끄고는 M-16 소총을 들었다.


다시 전선으로 가실 시간이군요.

그렇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좀 마무리해야 할 것 같네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 인터뷰가 기록물로 남겨지거나, 아니면 해외에 뉴스를 통해 전해지거나 하겠죠?

그럴 겁니다.

그러면 딱 두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네. 우선 가족을 잃은 분들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그리고, 외람된 말씀이지만...

(여기에서 그는 헛기침을 했다)

해외의 모든 시민들께선, 각 해당 국가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놓는 논평을 100% 신뢰하지 않는 게 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전쟁 초기 한국에서 있었던 일 때문입니다. 모든 나라가 그렇진 않았겠지만, 대한민국 행정부는 전쟁 초기 '모든 상황이 다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대국민 성명을 여러 차례 발표했죠.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문제는 멀쩡한 브리핑 룸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발표한 이 성명의 뉴스 동영상이 조작된 것이었다는 거죠.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방송, 그것도 대통령이 사는 서울의 청와대 기자실과 똑같이 꾸민 세트에서 촬영하고는 일본의 어떤 지역에서 송출한 것이라는 게 한국의 한 해커에 의해서 밝혀졌어요.


이 정도 되면, 개XX들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죠. 저는 진심으로, 이 전쟁이 끝나면... 아, 꼭 끝나기 전에라도, 기회만 있다면 한국 정부와 의회에 속한 놈들 누구라도 저 M-16 소총으로 대갈통을 날려버리고 싶습니다.

한국 의회... 의회가 수도 서울을 떠나서 대전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한 다음의 일이지만, 의회에선 집권당과 야당이 소개령 발동 여부를 놓고 한참 싸웠죠. 집권당은 자기네들이 서울을 떠난 주제에 대규모 소개령은 국민들에게 혼란만 초래한다고 지껄였고, 야당은 집권당을 상대로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그래봐야 어차피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제스쳐였지만, 매일매일 다퉜죠. 정부는 정부대로 우왕좌왕하면서 대책을 내놓질 못했어요. 앞에서 말한 대통령의 담화 해프닝... 아, 이건 아직까지도 정부에선 사실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처음엔 꼭 좀비놈들의 머리(뇌)를 파괴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심장만 제대로 노려도 된다고 했다가 그게 아닌 게 드러나자 처음부터 정부 발표는 머리와 함께 심장을 노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고, 국민들의 오해라고...


세계 대전 Z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맥스 브룩스 (황금가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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