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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시즘을 이야기할 때의 이사카 코타로: 마왕 요즘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때문에 나라 안팎으로 뒤숭숭하다. 위의 벽보는 반일 시위가 한참 벌어지고 있는 중국에서 발견된 거라고 하는데, 그 내용이 무시무시하다: '일본 남자는 모두 죽이고, 일본 여자는 모두 강간해라' 그런데 알고보면 중국에선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게 문화대혁명 시절의 홍위병. 그것도 까마득한 옛날이 아니라 불과 40여 년 전의 일이고, 이 때 중국 전역에서 이성을 잃은 홍위병들에게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숫자는 무려 3만 명이었다고. 바로 이런 시절에, 파시즘의 창궐, 그리고 그로 인한 위험을 경계한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마왕'을 읽게 된 건 참으로 시기적절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작가는 후에 '모던타임스'를 통해서 다.. 더보기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읽는 재미 이렇게 사진을 보니까 왠지 탁현민이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이사카 코타로에 관한 포스팅을 많이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취향이 맞다 보니 책도 많이 읽게 되고, 그래서 포스팅도 많이 하게 된다. 현역 작가들 중 이사카 코타로만큼 스펙트럼이 다양한 작가가 또 없진 않겠지만, 묘하게도 그렇게 다양한 취향의 작품들이 모두 내 취향에 잘 맞는다. 아기자기한 소품, 냉소가 가득한 장편, 작정을 하고 쓴 게 분명한 노골적인 스릴러까지 모두. 오늘 새벽에 막 책장을 덮은 그의 작품은 '오! 파더'였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성격과 개성과 취향이 제각각인 4명의 아버지(!)와 함께 사는 고딩 남자애가 화자로 등장하는 작품. 희한한 건, 엄마가 거의 나오질 않는다는 것. 그 4명의 아버지 가운데 누가 주인공 유키오의.. 더보기
최근에 읽은 책들 몇 권 최근 얼마간, 일이 좀 많다는 핑계로 블로그 포스팅은 게을리했지만 나름 책은 꾸준히 읽었다. 책을 사서 보는 게 아니라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다 보니 거의 의무적으로 읽게 되더군. -_- 어쨌든 진득하게 곱씹으면서 음미할 필요가 있는 책들보단 빨리빨리 휙휙 볼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해서 여러 권을... 거칠게 말하자면 로버트 해리스나 빈스 플린 같은 모던 스릴러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만 같고, 이런 장르에선 마치 교범처럼 통하는 작품인 만큼 탄탄한 구성과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다만 후대 작가의 '비슷한' 작품들을 먼저 보고 난 터라 아이라 레빈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느낌;; 전세계에 퍼져서 얼핏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각각 정해진 날짜에 살해하라고 사주하는 사람은 나치의 잔당이다... 더보기
참 상큼한 풍자, 그랜드 펜윅 이야기 현실을 풍자하는 방법에는 대략 두 가지 정도가 있는 듯하다. 하나는 커트 보네거트처럼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드는 방법. 덧붙이면 딱 '그 때 그 사람들' 까지의 임상수 감독도 이런 구분 안에 넣을 수 있을 듯(그 이후엔 조금...).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 시리즈를 쓴 레너드 위벌리처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주 상큼한 기분을 맛볼 수 있게 하는 방법. 그랜드 펜윅 시리즈 가운데 첫 작품인 뉴욕 침공기는 한 5~6년 전에 읽었는데 그 때도 이 재미진 작품에 흠뻑 빠졌다. 그러고는 시리즈의 3번째 이야기인 월스트리트 공략기를 조금 전에 다 읽었다. 참고로 2번째와 4번째 시리즈가 각각 달 정복기와 석유 쟁탈기 등이라고 하는데 첫 이야기로부터 오히려 3번째 이야기인 월스트리트 공략기가 자.. 더보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by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지구영웅전설, 핑퐁 같은 포복절도할 코미디를 많이 쓴 박민규 작가가 이렇게 가슴이 절절한 러브스토리를 쓰다니! 이 작가, 심지어 요망(?)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표지가 참 독특하다. 그 유명한 벨라스케즈의 '시녀들' 중에 하필이면 주인공(?)도 아닌, 시녀, 그 중에서도 참으로 못생긴;; 시녀에 하이라이트가 되어 있다. 그렇다. 이 작품은 철저히 이 땅의 아웃사이더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의 고용 시장에서 안 그래도 여성 노동자에 대한 고용 상황은 특히 좋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정말 '드물게 못생긴'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니.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를 볼 때에도 남자는 시선을 집중시킨다'.. 더보기
하이라이즈(by J.G.발라드), 머리 아픈 소설 ㅠ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란 말이 있다. 원래는 심리학에서 시작된 용어이고, 개념인데 이후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즈), 마르셀 프루스트(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무슨 뜻인고 하니 작품에서 벌어지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물리적인 그 사건 자체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대개는 주인공)의 기억 같은 내면적인 의식이나 심리 상태의 변화에 기능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모양새가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이, 세상이 몹시 부조리함을 느끼게 한다는 측면에선 카뮈가 창조한 뫼르소도 떠오른다. 아무튼 이렇게 뭔가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작가인 J.G.발라드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크리스찬 베일의 .. 더보기
처절한 우화, 갈라파고스(by 커트 보네거트) 간담이 서늘해지는 블랙 유머와 풍자로 유명한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갈라파고스'. 초반에 보면 작중 화자(이 작중 화자 또한... 상당히 괴이쩍은 존재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가 '1백만년 전, 그러니까 1986년'이라고 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처음엔 이게 그냥 다소 과장한, 유머러스한 표현인 걸로 생각했다. 근데 이게 왠일. 저기에서 1백만년 전이라고 하는 건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1백만년이 흐른 뒤에 하는 말인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을 읽기 전에, 제목의 도살장이라고 하는 표현이 뭔가 은유적인 걸로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소 잡고 돼지 멱 따는 도살장인 걸 알았을 때의 당혹감;;이 되살아났다. 그렇다면 아직 읽지는 않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고양이 요람.. 더보기
연기와 뼈의 딸(by 레이니 테일러) 아주 달달하기 그지없는, 여중딩~여고딩용 로맨스 판타지 소설. 읽는 동안 꽤 자주;; 손발이 오글거려서 혼났다. 다분히 미국적 취향이긴 한데 우리나라 여학생들에게도 잘 먹힐 듯. 이 세상의 것으로는 보기 힘든, 그야말로 완벽한 미모의 소유자인 (남자)천사가 수상한 과거를 지닌 17세 여고생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니! 그것도 종족의 차원을 극복하고서! 이건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하다. 일단은 1편에서 마무리가 되지만 이후에 속편도 나올 예정이고, 지금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작업 중이라고. 타겟팅이 명확하니 장사는 기본 이상 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다음 이야기가 별로 궁금하진 않다;; 더보기
좀 흔한 디스토피아 SF, 로보포칼립스 로보포칼립스에 관한 내용을 검색해 보면, 1978년생으로 젊디 젊은 작가인 대니얼 윌슨에 관한 이야기보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 작업 중'이란 내용이 훨씬 더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그 쪽이 '장사'에는 더 큰 영향을 끼칠 테니.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된 컴퓨터가 다양한 로봇들을 동원해서 인류 말살에 나선다. 이내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반격에 나선다는 이야기. 뭐 흔하디 흔한 이야기. 저 '반란군'의 일원으로 로봇도 합류한다는 것 정도가 조금 특이한 정도고 나머지야 뭐... 많고 많은 소설과 영화 등에서 익숙한 그런 모습이다. 처음에 조금 흥미롭더니 중간에는 좀 지루해졌고 마지막에 또 반짝 흥미로웠던 소설보다는, 도대체 스필버그 감독이 어떤 비주얼을 구현할.. 더보기
이 미스터리가 웃긴다! 명탐정의 규칙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나, 게임 등등을 보면 탐정의 추리에 가장 크게 방해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바로 헛다리만 짚는 경찰. 때로는 엉뚱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해서 체포까지 하고는 엉터리 수사 결과를 자랑스레 발표하기도 하는 등 정말 답답한 짓거리를 몸소 행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답은, 역시나 탐정이 아주 사소해 보이는 증거물에서 실마리를 얻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이런 작품들에서 경찰이 그렇게 멍청하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탐정의 추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인 것! 다양한 작품들에서 고전 탐정물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은, 아예 작품 속에서 탐정의 뛰어난 추리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