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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치 풍자 소설의 주말 예능 버전? '아크엔젤'(by 로버트 해리스) 로버트 해리스의 아크엔젤을 보니, 자연스럽게 10년 전쯤엔가 읽었던 알란 폴섬의 '모레'가 떠오른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던;; 바로 그 소설. 거기에선 순도 100%짜리 아리안족 청년의 몸에다가 '붙일' 냉동시킨 히틀러의 머리가 등장했는데, 이번엔 45년 동안 북러시아의 동토 속에 꽁꽁 숨어있던 스탈린의 아들이 등장한다.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입니다.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맞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미쳤기 때문에? 맞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그저 1회용에 불과했다면, 스탈린은 현재도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양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고 모두 패전했던 독일이란 나라가.. 더보기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 납량물이 잘 어울리는 뜨거운 계절이다. 그리고 흔히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중 책을 가장 많이 사서 가장 많이 보는 계절은 희한하게도 여름이라는 통계가 있다. 바로 이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아닐까.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1890~1937). 후대의 많은 대중문화 창작자들 중 특히 B급 쪽에 속하는 공포물을 즐겨 다루는 많은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소설가. 어렸을 적엔 다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되기도 했고 이후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지냈는데 그마저 사망하자 극도의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괴이한 은둔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후대에 높은.. 더보기
절망의 구 by 김이환 어느 날 갑자기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타난 지름 2미터 가량의 시커먼 공. 이 공은 사람(만)을 말 그대로 '삼켜버린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 공은 세상을 종말로 이끌고 홀로 남겨진 남자가 있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장르문학의 계보에서 한 자리 제대로 차지하고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묵시록(Apocalypse) 문학'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정말로 그렇다.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이 특별한 재미를 주는데 전체적으론 꽤 세심한 묘사도 돋보이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 사실 장르문학에서 이와 같은 표현은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책 한 권을 하룻밤 꼬박 새우며 독파한 일이 최근엔 없었는데 는 하룻밤에 다 읽었다. 그리고 새벽 동이 터오는 것을 보는데 참 희한했던 건 머리가 맑아지는(.. 더보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by 이사카 코타로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력. 문화 창작자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인데 우리나라에서도 팬이 많은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가 바로 그걸 아주 제대로 발휘할 줄 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가 무슨 뜻인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 이 희한한 제목의 소설은, 마지막 장(章)으로 들어갈 때쯤 무릎을 치게 만들고 참으로 화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꼭 전형적인 일본 소품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주인공인 새내기 대학생이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흥얼거리며 불렀어야 했던 이유가 있고, 하필이면 버스 안에서 그녀를 만났어야 했던 이유도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하필이면 집오리와 들오리로 비유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고, 그리고 이 모든 .. 더보기
아메리칸 사이코, 소설도 보고 영화도 보고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정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여피(Yuppies)'라는 말이 (본토인 미국에선 물론이고)우리나라에서도 꽤 유행했다(물론 우리나라의 여피족은 그보단 좀 뒤에 나타났다). 수입은 많고 나이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이들 사이에서의 유행이란 게 초고가 명품을 걸치거나 최고급 식단을 향유하는 것, 운동으로 신체를 가꾸는 것 등이었다. 겉으로 보면 남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이들이 맛보는 (거의 유일한)어려움이라면, 이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일생동안 한번도 고소득을 경험하지 못한 내 생각으론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식의 '나와바리'가 형성되면 대개 거기에서 발생되는 문제란 게 그런 거였으니 그저 짐작만 할뿐이다. 이런 여.. 더보기
모던타임스, 이토록 슬픈 부품(들) (리뷰에 앞서, 채플린의 영화는 국내 개봉 시의 한글 제목인 '모던타임즈'로, 본 리뷰의 대상인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국내 출시 제목인 로 표기할 것을 알린다)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대한 태엽 장치에 빨려들어가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어떤 식으로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개인은 깡그리 무시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이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21세기 코믹잔혹극'이란 부제가 붙은 또한, 무려 60여 년 전에 한 천재가 보여준 비전을 그대로 유지한다. 황당무계한 블랙코미디를 넘어서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그 누군가이며, 그.. 더보기
지름품 도착 하늘도 쳐다보지 못하고 살 정도로 짬을 내기 힘들 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지름신(이라고 해봐야 참 소박;;하지만)의 강림 질렀다. 그리고, 도착했다. 기특한 알라딘. 기대하고 있는 순서대로(?) 쌓아놓은 책들. 특히 러브크래프트 전집, 옛날에 일본어 중역본을 읽었을 때의 악몽을 떨쳐버릴 수 있겠지 더보기
<제5도살장> by 커트 보네거트: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풍자 신랄하기로 유명한 커트 보네거트의 을 보기 전에, 난 이 제목의 '도살장'이 무슨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거나 은유적인 표현일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이게 왠 걸. 진짜로 소 잡고 돼지 멱 따는 바로 그 도살장이었다. 사실 작가인 커트 보네거트 스스로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시치미 뚝 떼고서, 마치 실재했던 이야기를 논픽션 쓰듯이 그렇게 줄줄줄 풀어간 걸로만 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 빌리 필그림(주인공의 성씨가 '순례자'를 뜻하는 필그림인 것은 의미심장하다)이 진짜로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자신이 시간여행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을 이야기하면서, 2차 세계대전 최악의 작전이었던 드레스덴 공습을 빼먹을 수는 없다. 1시간의 짧은 공습 동안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무려 16만 명.. 더보기
<전설 없는 땅>, 대단하다 전설도 없고, 자비도 없다. 무자비하고 냉혹하다. 털끝만큼이라도 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정말 보기 드문 소설. 그런데 그게, 꽤 생생하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그래, 현실은 언제나 희망보다 암울하다. 일본인 작가인 후나도 요이치는 책 끄트머리의 소개글을 보면 원래는 르포라이터부터 시작을 한 인물로, 발품을 많이 파는 취재를 통해 주로 제3세계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많이 썼던 작가다. 현실이 그렇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래서, 독자는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잠깐 동안의 인상은, 마초들이 미개척지를 누비는 이야기의 탐험물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딱 1/5 분량을 지나면서 이 생각은 바뀌었다. 인접국인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묘한 정치적 긴장 관계, 국민들의 의식 차이, .. 더보기
이름 없는 책 짱 재미있다! 필명이 익명(Anonymous)인 저자는, 둘 중 하나다. 살아 돌아온 앰브로스 비어스, 아니면 로버트 로드리게즈. 마치 영화 의 소설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은 완벽한 '안드로메다 행 티켓' 그 자체다. 짤막한 챕터로 나뉜 이 책을 보는 동안, '도대체 어떤 작자가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해질 것이고, '뭐 이 따위 책이 다 있지'라는 생각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에 대해 불만이 가득할 수도 있다. 내용을 요약하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교훈 따위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B급 정서로 충만한 이 소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꽤 많으며,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서 어지간하면 손에서 떼어놓기도 힘들 것이다. 진짜 재미있다. 후회하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