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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하이라이즈(by J.G.발라드), 머리 아픈 소설 ㅠ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란 말이 있다. 원래는 심리학에서 시작된 용어이고, 개념인데 이후 제임스 조이스(율리시즈), 마르셀 프루스트(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같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무슨 뜻인고 하니 작품에서 벌어지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물리적인 그 사건 자체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대개는 주인공)의 기억 같은 내면적인 의식이나 심리 상태의 변화에 기능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모양새가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이, 세상이 몹시 부조리함을 느끼게 한다는 측면에선 카뮈가 창조한 뫼르소도 떠오른다.

 

아무튼 이렇게 뭔가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 작가인 J.G.발라드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크리스찬 베일의 아역 배우 시절 출연작인 '태양의 제국' 원작자로 유명하지만 그저 수수했던 이 작품과는 달리 '크래쉬' 같이 '뽕 맞은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원작으로 영화화된 작품 중 크래쉬를 봤는데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극도의 환각상태란 게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면서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만한 벌레가 타자기로 소설을 쓰던 영화 '네이키드 런치'의 한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날의 관점에선 별로 높지도 않은 40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거 층에 따라 스스로를 상층부(상류층)/중층부(중류층)/하층부(하류층)으로 나누곤 서로 질시하며 반목하다가 급기야는 서로에 대해 테러를 가하는 모습에선 현대 사회의 위선을 쌩얼로 까발리는 듯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건물 10층에 있는 슈퍼마켓의 음식 판매대가 텅텅 비자 처음엔 다른 사람이 키우던 애완동물을 잡아먹더니 급기야는 식인까지. 정말이지 충격적인 광경이 연출되기도.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묘사들이 정말 등장인물들의 시선으로 무지 덤덤하게(?) 그려지면서 마치 내가 그 지옥도의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여러 권 읽으면서 진도가 참 안 나갔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그 대부분은 번역이 영 후져서('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번역한 박현주씨, 보고 있나?) 그랬던 거지만 이번 '하이라이즈'의 경우는... 정말 읽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서 덮어버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청 높은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계급으로 구분되어 서로 편가르기를 한다'는 이야기만 듣고서 한국의 젊은 작가인 배명훈의 '타워'를 연상하기도 했는데... 그것처럼 담백한 작품은 절.대.로. 아니다. 읽기 전에 심사숙고하시라.

 

책 날개를 보니 이 작품은 지금 영화화가 검토 중이라고 하던데, 글쎄... 데이빗 크로넨버그 말고 이 작품을 제대로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연출자로 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