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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탐욕의 시대 by 장 지글러 이야기 하나. 전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는 브라질,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국내에 들어오는 커피는 베트남 산이 많다). 1989년 이후 커피의 소비자 가격은 몇 년에 걸쳐 무려 세 배가 비싸진 대신 정작 커피를 생산하는 농부들이 손에 쥐는 돈은 절반으로 줄었다. 이유가 뭘까?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브라질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와 베트남 등은 정치적으로나 군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네슬레나 크래프트 등의 초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석유생산국기구(OPEC)의 시스템을 빌어 국제커피협약(ICA)이란 걸 만들어 놓고 생산자의 수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취했다. 정치적으로, 군사 전략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곳에 위치한 민중들이 '공산주의'에 경도되는 걸 막기 위해서. 하지만 소비에트.. 더보기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더 로드/팔레스타인 우리는 절망에 대해서, 참 쉽게 이야기한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도무지 발전의 가능성이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고, 빛이 되어줄 아무런 대상도 찾을 수가 없다고. 그런 반면 또 우리는 희망에 대해서도, 참 쉽게 이야기한다. 당신의 오늘은 어제가 마지막이었던 그 누군가가 그렇게 바랬던 내일이었다고.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숨어있던 건 한 가닥 희망이었다고. 여기 책 두 권이 있다. 하나는 순수 문학 작품이고, 하나는 저널리스트가 쓰고 그린 르포. 이 두 권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희망'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상황을 그렸다는 것이다. 절망의 밑바닥. 바로 거기에 '더 로드(코맥 매카시)'와 '팔레스타인(조 사코)'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저자이기도 .. 더보기
공중그네 by 오쿠다 히데오 하얀 백지 위에, 까만 색의 문자들. 어떻게 그것만으로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는 한편으로 가슴 설레이게도 만들까. 이렇게 보면 작가는 참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구체적인 광경을 커다란 스크린에 펼치는 영화와는 다른, 활자화된 대상이 행간을 넘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글을 참 잘 쓴다'는 건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보면서 그 먹먹함에 눈시울이 뜨거웠고,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보면서 그 공포감에 심장이 오그라들었으며, 프레더릭 포사이드의 '자칼의 날'을 보면서 그 박진감에 손바닥에서 절로 스며드는 땀을 느꼈던 나는, 이제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보면서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뿜었다'. 무진장 웃기는.. 더보기
영화처럼 by 가네시로 가즈키 가네시로 가즈키라는 작가를,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재일동포'라는 분류에 넣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마치 그의 작품 'GO'에 나왔던 것처럼 조총련계 출신이니까(나름 독실한 맑시스트 출신인 그의 아버지 덕택이라고 한다). 구획 짓기에 익숙한 우리의(동시에, 일본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가 그렇게 평생토록 불안하게 외줄을 타는(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그의 문학적 감수성이 더욱 도드라졌고,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재미있는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상황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GO'와 다른 그의 작품들, 그러니까 '레볼루션 No.3', 그리고 연이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 '스피드', '연애소설' 이후 꼭꼭 숨었.. 더보기
다크 나이트 리턴즈 by 프랭크 밀러 이 정도 되면, 배트맨은 더 이상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인간적'인 영웅은 아니다. 멀끔한 영화 속 주인공은 더더욱 아니고. 그리고 또 이 정도 되면, 이전에 그래픽 노블을 접한 적이 있는 이라면 알겠지만, 코믹스, 그러니까 '만화'와 그래픽 노블이 다른 점을 이야기할 때, 일단 그 안에 담고 있는 철학이 다르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우리에겐 영화 씬 시티와 300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프랭크 밀러가 다시 창조한 배트맨의 이야기는 배트맨의 은퇴 이후 10년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한다. 고담 시는 여전히 범죄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휘황찬란한 도시. 여기까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끼어든다. 배트맨이 현역에서 스스로 은퇴(?.. 더보기
SF 느와르, 다이디타운(Dydee Town): by 폴 윌슨 '다이디타운', 흥미로운 소설을 한 권 읽었다. 지난 번에 포스팅했던 '라스 만차스 통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오리지널리티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 전에 어디선가 본 구석이 굉장히 많은 작품이란 점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 처음 4페이지를 보고 난 느낌: 이건,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 첫 장(Chapter)을 보고 난 느낌: 완전 레이몬드 챈들런데? - 두 번째 장(Chapter)을 보고 난 느낌: 이런, 이건 순진한 존 그리샴이야 - 끝까지 다 보고 난 느낌: 킥킥, 이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열라 깨는 SF 아일랜드아냐 다이디타운의 주인공 시그문드는 사립탐정이다.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선 다른 많은 작품에서 너무너무너무 익숙한 온갖 '꺼리'들.. 더보기
라스 만차스 통신: 이게 진짜 판타지 우선, 인상적인 일러스트로 책 전체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꽁꽁 싸맨(?) 이 독특한 표지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책을 다 읽고 난 뒤 머릿속에 떠오른 키워드 몇 가지를 주루룩 늘어놓으려 한다. (책 표지의 서평에도 나왔지만)카프카, 에도가와 란포(혹은 '진짜' 에드가 앨런 포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H.P.러브크래프트(아주 살짝), 어슐러 르 귄(역시 아주 살짝), 그리고 고독, 지독한 암울함, 용인할 수 없는 범죄, 타락, 사악함, 기타 등등. 그렇게, 분명히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론 굉장히 독특하고 때로 공포스럽기도 하며 어쨌든 파격적인 작품이다. 작가인 히라야마 미즈호는 멀쩡한 직장에 다니면서 10년 넘게 소설을 계속 썼다고 하고, 이 '라스 만.. 더보기
동서미스테리북스 몇 권 이하의 포스팅 역시 이전 블로그에서 살포시 가져온 내용. --------------------------------------------------------------------------------- 지난 여름에 필리핀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거길 가기 전에 책 몇 권을 구입했다. 가뜩이나 더운 나라에 그것도 휴양을 하러 가는데 머리 복잡한 책 본다고 해봐야 몇 페이지 못 넘길 것 같아서 '가볍고' '저렴한' 책을 몇 권 사서 갔는데 제대로 보진 못했다. 어쨌든, 그 책들 중 몇 권은 바로 '동서미스테리북스' 시리즈였다. 지금의 동서미스테리북스 시리즈는, 주로 추리나 스릴러, 하드 보일드 등 가벼운 페이퍼백들인데 하여튼 옛날 고리짝에 대부분 중역을 거쳐 나왔던 책들이 재판을 거쳐서 나온 버전(?)이다.. 더보기
내가 사랑한 스파이(들): 첩보소설의 거장, 프레드릭 포사이스 다른 그 무엇보다 문학적인 완성도를 중시하는 순수문학에 반하여, 대중문학(혹은 장르문학)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최대의 재미를 선사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친다. 둘 사이의 경계에 관한 (매우 심각한)탐구나 심지어 아예 그 경계를 허무는 작업 또한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인데, 중요한 건, 그렇게 둘 사이를 어떤 식으로든 구분하는 일은 전문적인 비평의 지면에서나 필요한 일이라는 것. 어쨌든 훨씬 흥미진진한 쪽은 당연히 대중문학이다. 그런 대중문학의 많은 장르 중 첩보소설/스파이소설이 있다. 대중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어둠의 심장'이나 '노스트로모'로 유명한 폴란드 작가 조셉 콘라드,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 등 당대의 작가들이 첩보소설을 집필한 바는 그다지 많은 사.. 더보기
조지 펠레카노스(George Pelecanos)의 하드보일드 'D.C' 원더랜드 미국의 워싱턴 D.C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바로 위 사진의 미 국회의사당.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행정 수도이기도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뭔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치/경제의 중심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이 거대 도시의 뒷골목, 특히 유색인종들의 밀집지역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기껏해야 나이 스물을 넘기지 못한 어린애들이 마약에 쩔어 사는가 하면 총탄에 목숨을 잃기도 하며 역시 비슷한 나이의 몸을 파는 여자애들이 들끓는다. 물론, 승용차로 불과 몇 분이면 닿는 안락한 백인 거주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의 자동차 범퍼에 '티벳에 자유를'이라고 쓴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그러면서 백인들은 자신들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