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아니지만, 이 방대한 저작물을 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긴 했다. 그 책에서도 군데군데 블랙 유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책, 에선 아예 작심하고 독자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 현란한 속사포를 쏘아댄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20여 년 전, 저자는 대학 동창과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친구는 유럽의 미녀와 하룻밤을 지낼 요량으로 여자들에게 이렇게 뻐꾸기를 날린다는 것이다: "실례합니다만, 제가 뭔가를 15cm 옮길 건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뭔데요?" "정액 42g이요" 그리고 호텔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보는 책은, 14세기 유럽에 창궐한 흑사병에 관한 논문으로, 그 제목에서부터 풍부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흑사병'이란 책이다;; 역자 후기를 보.. 더보기
절망의 구 by 김이환 어느 날 갑자기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타난 지름 2미터 가량의 시커먼 공. 이 공은 사람(만)을 말 그대로 '삼켜버린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 공은 세상을 종말로 이끌고 홀로 남겨진 남자가 있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장르문학의 계보에서 한 자리 제대로 차지하고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묵시록(Apocalypse) 문학'의 일원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 정말로 그렇다.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이 특별한 재미를 주는데 전체적으론 꽤 세심한 묘사도 돋보이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 사실 장르문학에서 이와 같은 표현은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책 한 권을 하룻밤 꼬박 새우며 독파한 일이 최근엔 없었는데 는 하룻밤에 다 읽었다. 그리고 새벽 동이 터오는 것을 보는데 참 희한했던 건 머리가 맑아지는(.. 더보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by 이사카 코타로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력. 문화 창작자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인데 우리나라에서도 팬이 많은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가 바로 그걸 아주 제대로 발휘할 줄 안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가 무슨 뜻인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 이 희한한 제목의 소설은, 마지막 장(章)으로 들어갈 때쯤 무릎을 치게 만들고 참으로 화사(?)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꼭 전형적인 일본 소품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주인공인 새내기 대학생이 하필이면 그 자리에서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흥얼거리며 불렀어야 했던 이유가 있고, 하필이면 버스 안에서 그녀를 만났어야 했던 이유도 있으며, 등장인물들이 하필이면 집오리와 들오리로 비유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고, 그리고 이 모든 .. 더보기
아메리칸 사이코, 소설도 보고 영화도 보고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정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여피(Yuppies)'라는 말이 (본토인 미국에선 물론이고)우리나라에서도 꽤 유행했다(물론 우리나라의 여피족은 그보단 좀 뒤에 나타났다). 수입은 많고 나이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이들 사이에서의 유행이란 게 초고가 명품을 걸치거나 최고급 식단을 향유하는 것, 운동으로 신체를 가꾸는 것 등이었다. 겉으로 보면 남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이들이 맛보는 (거의 유일한)어려움이라면, 이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일생동안 한번도 고소득을 경험하지 못한 내 생각으론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식의 '나와바리'가 형성되면 대개 거기에서 발생되는 문제란 게 그런 거였으니 그저 짐작만 할뿐이다. 이런 여.. 더보기
모던타임스, 이토록 슬픈 부품(들) (리뷰에 앞서, 채플린의 영화는 국내 개봉 시의 한글 제목인 '모던타임즈'로, 본 리뷰의 대상인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은 국내 출시 제목인 로 표기할 것을 알린다)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대한 태엽 장치에 빨려들어가는 노동자의 모습이다. 어떤 식으로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개인은 깡그리 무시하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이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사카 코타로의 '21세기 코믹잔혹극'이란 부제가 붙은 또한, 무려 60여 년 전에 한 천재가 보여준 비전을 그대로 유지한다. 황당무계한 블랙코미디를 넘어서는 페이소스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그 누군가이며, 그.. 더보기
지름품 도착 하늘도 쳐다보지 못하고 살 정도로 짬을 내기 힘들 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지름신(이라고 해봐야 참 소박;;하지만)의 강림 질렀다. 그리고, 도착했다. 기특한 알라딘. 기대하고 있는 순서대로(?) 쌓아놓은 책들. 특히 러브크래프트 전집, 옛날에 일본어 중역본을 읽었을 때의 악몽을 떨쳐버릴 수 있겠지 더보기
<제5도살장> by 커트 보네거트: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풍자 신랄하기로 유명한 커트 보네거트의 을 보기 전에, 난 이 제목의 '도살장'이 무슨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거나 은유적인 표현일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이게 왠 걸. 진짜로 소 잡고 돼지 멱 따는 바로 그 도살장이었다. 사실 작가인 커트 보네거트 스스로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시치미 뚝 떼고서, 마치 실재했던 이야기를 논픽션 쓰듯이 그렇게 줄줄줄 풀어간 걸로만 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 빌리 필그림(주인공의 성씨가 '순례자'를 뜻하는 필그림인 것은 의미심장하다)이 진짜로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자신이 시간여행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을 이야기하면서, 2차 세계대전 최악의 작전이었던 드레스덴 공습을 빼먹을 수는 없다. 1시간의 짧은 공습 동안 군인과 민간인 가리지 않고 무려 16만 명.. 더보기
<전설 없는 땅>, 대단하다 전설도 없고, 자비도 없다. 무자비하고 냉혹하다. 털끝만큼이라도 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정말 보기 드문 소설. 그런데 그게, 꽤 생생하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다. 그래, 현실은 언제나 희망보다 암울하다. 일본인 작가인 후나도 요이치는 책 끄트머리의 소개글을 보면 원래는 르포라이터부터 시작을 한 인물로, 발품을 많이 파는 취재를 통해 주로 제3세계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많이 썼던 작가다. 현실이 그렇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래서, 독자는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잠깐 동안의 인상은, 마초들이 미개척지를 누비는 이야기의 탐험물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딱 1/5 분량을 지나면서 이 생각은 바뀌었다. 인접국인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묘한 정치적 긴장 관계, 국민들의 의식 차이, .. 더보기
이름 없는 책 짱 재미있다! 필명이 익명(Anonymous)인 저자는, 둘 중 하나다. 살아 돌아온 앰브로스 비어스, 아니면 로버트 로드리게즈. 마치 영화 의 소설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은 완벽한 '안드로메다 행 티켓' 그 자체다. 짤막한 챕터로 나뉜 이 책을 보는 동안, '도대체 어떤 작자가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해질 것이고, '뭐 이 따위 책이 다 있지'라는 생각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에 대해 불만이 가득할 수도 있다. 내용을 요약하는 건 사실 별 의미가 없다. 교훈 따위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B급 정서로 충만한 이 소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꽤 많으며,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서 어지간하면 손에서 떼어놓기도 힘들 것이다. 진짜 재미있다. 후회하지 .. 더보기
본격 하드보일드! 신주쿠 상어 별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본격 하드보일드! 이 한 마디면 끝 사메지마 형사, 짱먹어라 신주쿠 상어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오사와 아리마사 (노블마인, 2009년) 상세보기 사실, A4 한 페이지 분량의 리뷰를 썼는데 클릭 한 번을 실수한 관계로 다 날라갔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쓰려니 도저히 안 될 것만 같아서 최대한 간단하게 날림으로 갑니다 그래도 짱 재미있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