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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징치 풍자 소설의 주말 예능 버전? '아크엔젤'(by 로버트 해리스)





로버트 해리스의 아크엔젤을 보니, 자연스럽게 10년 전쯤엔가 읽었던 알란 폴섬의 '모레'가 떠오른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던;; 바로 그 소설. 거기에선 순도 100%짜리 아리안족 청년의 몸에다가 '붙일' 냉동시킨 히틀러의 머리가 등장했는데, 이번엔 45년 동안 북러시아의 동토 속에 꽁꽁 숨어있던 스탈린의 아들이 등장한다.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입니다.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맞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미쳤기 때문에? 맞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그저 1회용에 불과했다면, 스탈린은 현재도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양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고 모두 패전했던 독일이란 나라가 그 잿더미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오늘 유럽의 큰손, 세계의 큰손이 되지만 않았다면 히틀러가 1회용 반창고로 치부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과거의 소비에트연방은 냉전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이리저리 찢겼고, 그것의 콤플렉스는 지금 러시아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 러시아엔 '스탈린'이 필요하다...는 것이 작품 속 파시스트의 이야기.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스탈린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파시스트 독재자였고, (당연히)엄청난 폭정을 휘둘렀으며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많은 대중문화 작품에서 히틀러가 고대의 시체 소환술 같은 여러 가지 비학(秘學)에 심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후대에 히틀러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 다소 윤색된 부분도 많다. 스탈린에 관한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은 있겠지만, 개가 짖는 소리(한마디로 개소리;;)만 나오는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춤을 췄다는 이야기 같은 건... 정상인이라면 정말이지 믿기 힘든 것.

같은 팩션이라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같은 아동문학;;에 비하면 '아크엔젤'은 좀 무게감이 느껴지는 편이다. 마침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소리를 들어 마땅할 MB정권의 4년이 지났고, 올해는 대선이 있다. 이런 와중에, 마찬가지로 파시스트에 다름 아니었던 박정희가 롤모델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말하자면,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 묵직한 시사 교양 프로라면, 로버트 해리스의 '아크엔젤'은 아주 가벼운 주말 예능 버전이라고나 할까? 지극히 대중적인 스릴러물이면서도 나름의 풍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