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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



납량물이 잘 어울리는 뜨거운 계절이다. 그리고 흔히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중 책을 가장 많이 사서 가장 많이 보는 계절은 희한하게도 여름이라는 통계가 있다. 바로 이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아닐까.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1890~1937). 후대의 많은 대중문화 창작자들 중 특히 B급 쪽에 속하는 공포물을 즐겨 다루는 많은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소설가. 어렸을 적엔 다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되기도 했고 이후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지냈는데 그마저 사망하자 극도의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괴이한 은둔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후대에 높은 수준의 재평가를 받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이 살아 생전엔 생계를 잇는 일조차 힘들어서 싸구려 잡지의 편집일을 맡기도 했으며 그 와중에도 꽤 많은 작품을 썼고,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가 위대한 것은 그저 '무서운 소설'을 많이 썼기 때문이 아니다. 그 스스로가 '크툴루 신화'와 '네크로노미콘'으로 대표되는, 한 세계와 세계관의 창작자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공포를 이야기하면서, 바로 '미지의 것을 대하는 감정이 바로 공포'라고, 명쾌하고도 끈적끈적하게(?) 정의를 내린 부분은 그의 탁월한 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 전집(1권과 2권)은 작년에 나오자마자 샀는데 중간에 먼저 다른 책을 읽기도 했고 이런저런 바쁜 일도 있어서 미루고 미루다 1년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그리고, 1권으로 지난 주의 열대야를 버텼다... 몹시 무섭다!

바로 어제까지 다 읽은 건 두 권 중 1권. 1권은 '크툴루의 부름'과 '인스머스의 그림자' 등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세계를 스스로 지탱하는 단편들로 이뤄져 있다. 인간의 역사와는 궤를 달리 하는, 미지의 시공간을 관통한 역사. 그리고 지금껏 인간이 만난 적이 없는(정확히 말하자면,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만난 적이 있는) 미지의 존재. 그들이 이제 나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특히 '이런저런 일로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딱히 사람의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내는 일단의 무리가 밖에서 내 침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장면(이런 장면은 그의 단편에 꽤 많이 나온다)은 정말이지 오싹해서, 창밖에서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오늘부터 볼 예정인 2권에선, 그의 작품들 중 주로 SF와 공포가 결합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고 하니 더 기대를 해본다.

일단 읽어보시라. 스티븐 킹, 존 카펜터, 클라이브 바커, 허셀 고든 루이스, 로저 코만, H.R.기거 등등 수많은 이들이 왜 그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P.S: 지금 시중에서는 작년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전집 1, 2권 말고도 '러브크래프트 코드'란 제목을 달고 5권 묶음으로 나온 책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후자의 러브크래프트 코드는 절.대.로. 비추. 몇 년 전에 시립도서관에서 일부를 봤는데, 일본어 중역본인데다 이 중역 자체도 수준이 매우 낮으며, 오타도 쩔어준다;; 일단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전집 1, 2권으로 충분할 것이다(앞으로 3, 4권도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