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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현실을 위장하기 위한 가상, 나아가서는 현실보다 우선하는 가상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상정한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혜안이 무색할 정도였다. 한동안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란 단어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십자포화를 내뿜었던 일 말이다.

대중문화의 현장과 시장이 모두 유행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단어가 과연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모호한 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까지, 참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소비하면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가상현실이란 단어에 있어서 기표와 기의의 간극을 메운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의 상상력이었다.

달리 말하면, 가상의 영역에서 여전히 주인공은 '나 자신'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HUD(Head Up Display) 쓰고 허공에서 삽질하는 꼬락서니가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이 때까지만 해도 '세상의 중심은 나' 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란 단어가 또 다시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다. 이 증강현실이 이전의 가상현실과 가장 크게 다른 점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 단어의 세련된 뉘앙스에 처음 주목한 이들은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이라는 것과, 나머지 하나는 바로 그런 이유로 까딱 잘못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후자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증강현실이란 말은 사실 예전부터 있던 말은 아니고, 사회의 발전에 따라 새롭게 창조된 단어다. 지난 2008년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그룹에서 발표한 '미래를 움직일 10대 혁신 기술' 중 대표로 꼽기도 한 증강현실은, CG 등을 통해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만 시각화를 시킨다.


증강현실을 실연할 수 있는 기기(Device)는 다양하다


그런만큼 훨씬 더 세련되고, 더 전략적이고, '더 섹시하다'. 뭔가 거추장스럽게시리 '나는 지금 뭔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기동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거의 받을 수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 생활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꾸밀 수가 있)다. 바로 그래서 신개념 마케팅의 요소로 환영을 받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영화 장면 하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영화의 주인공 존(톰 크루즈)이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CCTV가 존의 홍채(눈)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그를 알아보고는 다정하게시리 이름도 불러주며 그에게 딱 맞는 맞춤형 광고가 (친절하게도)광고판에 투사된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온 상상력의 산물 중 다수가 후대에 실제로 구현되었는데(SF에 나왔던 수많은 '공상과학스러운' 기계들 중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한 건 타임머신 정도 말곤 없는 것 같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개봉되었던 2002년만 해도, 불과 10년 정도의 시간 후에 이 멋진(두려운?) 상황이 현실이 될 것이라곤 누구도 생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무려 2054년이다!).



이건 조크 ^^;;



자, '드래곤볼'의 스카우터가 현실화되지 말란 법이 과연 있는가?


 

아무튼 이렇게 '섹시한' 첨단기술이, 사람들의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해준다는 기본 원칙을 넘어서서 생활 자체를 지배하려 드는 상황이 벌어지려 하기 전에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모든 정보가 체계화되고 집중될수록 그것을 왜곡하기는 더 쉬워지는 법이다. 내 주변 1Km 반경에서 '물 좋은' 나이트클럽을 자동으로 검색해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수질'은 과연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이웃한 두 경쟁 업소 중 한 군데가 작정을 하고 이 데이터에 해코지를 하겠다고 덤벼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있나? 아니면, 아예 이런 종류의 어플리케이션 제작 업체에 스폰서를 자청하고서 경쟁 업소를 완전히 배제하는 전략을 들고 나온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물론 너무 앞서가는 기우일 수는 있다. 그러나 첨단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묵시록적인 상황은 우리 주변에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다. 첨단기술이란 그저 편리한 도구일뿐, 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짐승의 털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서 들짐승을 사냥할 때 손에 들었던 돌도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도구는 바로 그렇게 제 기능을 발휘할 때에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폰의 잠금을 풀고 내 주변에 나와 같은(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성이 누가 있는지 열심히 검색하고 뻐꾸기를 날려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