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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에는 왜 해적이 많을까?



일본에서 '대표적으로 웃기는' 온라인 커뮤니티(보다는 좀 더 큰 개념이지만 딱히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인 2ch에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관한 농담이 종종 올라온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한다.


소말리아, 너무 처절한 상황이라 오히려 웃음이 나온다. 해적, 유괴가 주요산업으로, 올 한해 그것으로 벌어들인 돈이 30억엔을 넘겼다고.

(위의 글에 대한 답글)그 유명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이렇게 치안이 나쁜 곳에는 있을 수 없다'라며 멤버 전원이 도망가고 지부가 무너진 나라가 바로 소말리아.


또 있다.

최근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 해적의 정체는 소말리아 어부들이라고 하지만 그 해적들의 규모나 무장 수준을 고려해볼 때 분명 소말리아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글에 대한 답글)유감스럽게도, 현재 소말리아에는 정부가 없어.



유명한 전쟁영화 '블랙호크다운'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예전엔 우리나라의 상록수부대가 UN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파병되기도 했던 소말리아에선 요새 해적이 말썽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어제, 청해부대가 한 껀 했다. 지난 달에 현지에서 작전을 시작한 우리나라의 청해부대는 어제 파나마 유조선을 소말리아 해적들로부터 보호하며 덴마크와 북한의 상선을 구한 데 이어 세 번째 임무수행에 성공한 것.

나름대로 중무장을 갖추고 군대식으로 훈련도 받는다지만, 청해부대를 비롯해서 특수훈련을 마친 각국의 정예부대가 도사리고 있는 와중에 이 해적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소말리아에 그렇게 해적이 많은 걸까?



혼란한 정치 상황이 해적질을 부추겨

위의 농담은 사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현재 소말리아에는 대통령(압둘라이 유수프)도 있고 합법 정부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 정부라는 게 행정적인 영향력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있으니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상태. 여기에 각 지역의 군벌들이 난립하여 내전이 하루도 그치질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틈타 원래는 어족자원이 풍부한 편이었던 소말리아 인근 해역은 각국의 불법 어업이 성행하게 되었고, 심지어 네덜란드 등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유독성 산업 폐기물을 굳이 여기까지 싣고 와서 무단으로 버리는 바람에 인근 어촌의 주민들이 오염 물질로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급기야 이 동네의 어부들이 생존권 쟁취에 나섰다. 인근 해역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한, 일종의 자경단이 된 것이다. 여기에 군벌들과,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한 다국적 재벌들이 자금을 지원하자 점차 '제대로 된 해적'의 모습을 갖추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소말리아의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

중고딩 시절 세계지리 시간에 졸지 않았던 이라면 아프리카대륙이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는 감을 잡고 있을 것이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의 동쪽 끝 부분,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위에는 홍해가 있고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엄청난 규모의 유조선과 상선이 하루에도 골백 번은 지나다니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아프리카의 뿔' 소말리아



까놓고 말해서 해적질은 '돈이 되는 장사'라는 것이 명백한데 길목까지 좋으니, 이것 또한 소말리아에 해적이 창궐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소말리아의 해적들은 일반적인 유조선과 화물선, 여객선은 물론이고 심지어 탱크와 탄약을 잔뜩 실은 우크라이나 선박까지 닥치는 대로 납치한 적이 있다(이 무기들은 케냐로 들어갈 계획이었다고).


소말리아 해적들의 태도 돌변

이 해적들이 인근을 지나는 선박들을 납치하는 '해적질'을 하는 것은 위에도 말했듯이 인질들의 몸값으로 상당한 수준의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그런지 인질들이나 볼모로 잡힌 화물 등에 대해 이전까진 별다른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일단 상품에 기스가 나면 가격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이와 같은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도, 다소 복잡한 이해 관계가 이들의 해적질의 근저에는 있다. 위에도 이야기했듯이 소말리아 해적들은 지역의 군벌들과 밀접하게 연결 되어 있는데, 현재 소말리아의 과도정부는 이들 군벌들을 대화의 상대로, 정치적 파트너로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 따라서 군벌들은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과도정부로 하여금 군벌들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고 있어 이와 같은 무력시위를 지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 달엔, 선원들은 사전에 모두 떠나보낸 뒤 혼자서 볼모로 잡혔던 미국인 리처드 필립스 선장이 미 해군의 특수작전에 의해(이 과정에서 소말리아 해적 5명이 사살되었다)구출되는 일이 일어났다. 미국인들에겐 훈훈한 감동이었겠지만 이 구출작전 이후 소말리아 해적들은 태도를 돌변, 특히 미국 선박에 대해서는 보복 공격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에도 소말리아 해적들은 몇 번에 걸쳐 인근 해역을 지나는 선박들에 대해 '노략질'을 시도했으나 선원의 목숨을 의도적으로 노린 사전 공격은 아직까진 보고된 바가 없다.


'정치', 사실상 유일한 해결 방안

그렇다면 이렇게 국제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렵긴 하지만, 있다. 정치적으로 푸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는 게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차대전 이후 전세계에서 벌어진 수많은 분쟁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우선 소말리아의 정국이 하루라도 빨리 안정되는 것이 급선무. 그래야 이 나라의 청년들이 자국 내에서 일자리를 갖고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겠지. 솔직히 누군 좋아서 배 타고 다니며 총질을 일삼겠는가. 그런데 뭐 따지고 보면 이런 문제는 아프리카 국가라면 어디나 다 갖고 있다. 아프리카에 산적한 문제에 있어 미국과 유럽 등의 강대국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추가: 해적, 소말리아에만 있나?

현재는 이렇게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런 해적들은 소말리아에만 있나? 그렇진 않다. 인도네시아의 말라카 해협에도 지난 2000년대 초반까지 해적이 창궐했다(곽경택 감독의 영화 '태풍'에서 국민 꽃미남 장동건이 이 지역의 해적 '씬'으로 분한 바 있다). 다만 현재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많이 격퇴됐고, 출몰 건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2003년 말라카 해협에서의 해적 출몰 지도



그 이유는 뭘까. 국제해사기구(IMB)에 따르면, 관할 정부의 지도력과 긴밀한 국제 공조가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을 퇴치하는 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정국이 다소 불안정한 면은 있어도 소말리아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게다가 소말리아 해적의 가장 중요한 탄생 배경에는 위에도 이야기했듯이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는데, 이곳 아시아의 해적들은 IMF 위기 이후 출몰 횟수가 가장 많았던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다. 지난 10년 동안 아시아 경제도 어느 정도 회복을 한 것.

다만 최근 북미발 경제 위기가 전세계를 휩쓸며 남부아시아도 당연히 타격을 입고 있고,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전세계적으로 집중 조명되면서 말라카 해협의 해적들도 '소말리아 해적들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첩보가 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코에이의 '대항해시대'에서나, 혹은 잭 스패로우에게나 해적은 뭔가 로망이 서린 낭만적인 직업인 것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