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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똥파리: 두 가지 측면에서의, 다른 선택




(스포일러 과다함)




예상했던대로, 무지막지한 영화 똥파리를 보았다. 참으로 스산한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봤던 옛날(?)의 그 영화들과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선택을 한 걸 볼 수 있었다.

폭력의 미분법, 그리고 체화의 적분법

똥파리를 보고서 류승완 감독의 충격적이었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떠올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개봉 전부터 국내외에서 호응을 얻었으며, 영화는 에너지로 흘러 넘칠 지경이라는 것. 그리고 그 영화(들)속에서 살과 살이 맞부닥치는 폭력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온 가족이 모여 앉은 저녁 시간에 TV에서 흘러나오는 막장 드라마에서의 시추에이션보단 오히려 교육적(?)이란 생각이 들 정도라는 것까지도.

해피엔딩이 어울리지 않는 이 두 편 영화에선 모두 폭력의 악순환을 그리고 있는데 똥파리의 경우는 그 폭력의 단위를 보다 더 조밀하게 나눈다. 바로 가족. 누구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 마땅할, 사회 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으로부터 등장인물들은 폭력을 학습하고, 피해를 입으며, 체화한다.




가족이 더 이상 가족이 아닐 때, 생판 남보다 더 미워진다는 말도 있다. 상훈과 연희의 가족(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온갖 몹쓸 짓들을 보자면 비록 영화라지만 정말이지 한겨울에 오한이 들 지경이다. 상훈, 연희, 형인이 이루는 유사(pseudo) 가족이 의도적으로 매우 평화롭게 그려진 건, 다 이유가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선 그토록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의 대상으로 등장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의 문제를 어렴풋하게 제시했다면, 여기 똥파리에선 너무나도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곤 관객에게 묻는(것 같)다. 상훈이라는 캐릭터의 지금이 어떻게 완성된 건지 아냐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저 인간 이하의 말종이 도대체 어쩌다 저 지경이 된 건지 아냐고.

왜곡된 판타지를 지상으로 끌어내리다

처음 똥파리에 관한 정보를 들었을 때, 맨날 폭력을 일삼는 몹쓸 인간 하나와 폭력으로 상처 받은 여고생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굉장히 불안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구도, 그러니까 다분히 '남성'의 입장에서 강요된 극단적 '여성성'이 강요되거나 하지는 않을까 했던 것이다.




첨언하자면 김기덕 감독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달리 설명할래야 달리 설명할 수가 없는) 왜곡된 판타지는 에로티시즘도, 탐미주의도 아닌 굉장히 심각하게 삐뚤어진 이데올로기의 발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별도의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면서도 다행스럽게도(?) 상훈과 연희는 섹스를 안 한다. 존재 자체가 폭력인 상훈이 연희를 잡아다 놓고 강제로 어찌어찌 몹쓸 짓을 하지 않고서 이토록 귀여운 연애만 하는 게 어떻게 보면 현실과 거리가 먼 판타지라고 보일 정도. 사실 전체 대사의 90% 가까운 욕설만 빼고 보면 똥파리는 데이트 무비로도 손색이 없을(?) 드라마투르기를 갖고 있다고 본다.

어쨌든 주인공은(그리고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인 상훈-양익준은 주연에다 연출, 시나리오까지 겸했다) '이와 같은' 영화에서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을 피해갔다. 그것만으로도 가치는 있다.

그리고, 결말: 죄의 댓가, 그리고 악순환

중반이 지날 무렵, 상훈의 입에서 "사람 죽이고 죗값을 치룰 수 있나 보자"란 대사가 나왔을 때, 장현수 감독이 연출한 게임의 법칙(똥파리는 이 영화와도 은근히 닮았다)을 연상했다. 연희의 어머니를 죽인 죗값을, 상훈이 목숨으로 갚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상훈은 비참한 최후를 맞지만, 그래서 적어도 영화 속의 이야기는 매조지를 하게 된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극단적 폭력, 제 한 목숨 건사하고자 발악하는 군상들의 악다구니, 그리고, 악순환.

똥파리라는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거다.

 

똥파리
감독 양익준 (2008 / 한국)
출연 양익준, 김꽃비, 이환, 정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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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정말 이제는, 영화관에서 관람 전에 핸드폰을 강제로 수거하는 조치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2시간 동안 핸드폰도 꺼놓지 못할 정도로 바쁜 볼일이 있는 사람이 도대체 영화는 어떻게 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