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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더 로드(2010)



미국 현대문학에서 J.D.샐린저(호밀밭의 파수꾼)와 함께 '헤밍웨이 이후'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코멕 맥카시 작 <더 로드>를 보고 난 다음의 느낌은 말 그대로 한숨이 푹푹 쏟아지는;; 지경이었다.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암울함 그 자체.

그리고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궁금해졌다. 알다시피 <더 로드>는 모종의 이유로 세상이 완전히 멸망한 이후의 묵시록을 그리고 있는데 과연 그렇게 된 이유가 뭔지 혹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작품은 아니다(세상이 뒤집어지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스펙타클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작품이다). 그냥 '온통 잿빛이고, 하여튼 설명하기 힘든 어떤 것들로 가득 찬 세상'을 과연 어떻게 보여줄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스크린에서 만나게 된 잿빛의 미래(아마도)는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선명한 색감을 보여주는 디지털 상영을 통해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어느 샌가 꽤 많아졌는데, <더 로드>는 약간 투박한 느낌의 필름으로 봐야 제격이라는 생각.

일단 배경은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더 로드>는 원작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선과 악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남의 것을 약탈하는 이, 그보다 더 심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이가 과연 '나쁜 사람'인가? 인간다움을 끝끝내 유지하기 위해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이는 과연 '착한 사람'인가?

그리고, 구원. 원작과 달리 영화는 조금은 더 '명확한' 엔딩을 취하는데,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을 과연 '구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더 로드>는 원작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여러 가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연말연시의 대목 시즌을 맞이하야 3D 그래픽의 캐릭터와 망나니 도사와 주먹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까지, 참 아찔한 시각적 쾌락을 제공하는 주인공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숨가쁜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더 로드>가 흥행에 성공할 것 같지는 않지만 꽤 오랜만에 사색에 젖게 만드는 영화를 봤다.

P.S: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뜰 때에야 비로소 로버트 듀발과 가이 피어스가 출연한 것을 알게 됐다. 의외로 캐스팅이 화려한 편. 그리고 영화가 끝난 다음에야 생각이 났는데, 주인공 부자(父子)는 딱히 이름도 없다(심지어 부인이자 엄마로 나온 샤를리즈 테론도). 주인공 꼬마 역의 코디 스밋 맥피라는 아역 배우의 연기도 눈여겨 봐야 할 듯.





요 포스터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