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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러브 익스포져: 이토록 극적인 경험






농담이 아닌 사랑 이야기
소노 시온 감독이 연출한 러닝타임 237분짜리(!) 영화 <러브 익스포져>를 보는 것은 여러 모로 매우 극적인 경험이다. 어떤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어야 좋은 영화'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러브 익스포져>는 당연히 좋은 영화다. 4시간 동안의 이야기는 결국 '지고지순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단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야 쌔고 쌨지만, 이 영화는 조금 특별하다. 마치 프리츠 랑 감독의 <엠>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 <러브 익스포져>의 전반부는 포복절도할 코미디와 목불인견의 하드고어(...) 씬이 뒤섞여 있는데, 그 두 요소가 이질적이긴 하지만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일본 영화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니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후반부는, 일견 사회파 드라마로 보이기도 한다. 대략 10년 전 일본 사회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옴 진리교 사건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상황이 빚어지는데, 사람들이 이런 사이비 종교에 빠질 때 일본의 기성 종교와 사회는 과연 제대로 된 역할을 한 것인지 꽤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한 바로 이런 부분과 맞물려서 영화가 갖는 또 한 가지 특징. <러브 익스포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니시지마 다카히로의 극중 이름 '유우'는 실제로 가족이 옴 진리교에 투신했다가 빠져 나온 경험을 갖고 있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의 이름과 같다.

다시 말하지만, <러브 익스포져>가 이야기하는 바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심지어 성경의 고린도전서 13장(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하는 바로 그 구절)이 그대로 대사로 나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봤던 그렇게 많은 사랑 이야기 중 가장 독특하고, 아무튼 가장 극적인 (4시간에 이르는)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감독과 출연진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완전히 대중 친화적인 취향의 작품을 내놓는 감독은 아닌 모양이다(그럼에도 <러브 익스포져>는 작년에 일본에선 6개월 동안 장기 상영을 하며 흥행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4시간짜리 영화가!).




주인공 유우 역의 니시지마 다카히로는 배우면서 동시에 가수. 왕년의 홍콩 배우들 만큼 요즘 일본의 젊은 연예인들은 가수와 배우를 겸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듯. 영화에서 여장을 한 모습이 몇 번 나오는데, 이 여장이 놀랄 만큼 잘 어울리기도 한다.




유우를 사랑으로 인도(?)하는 요코 역은 미츠시마 히카리란 배우가 맡았다. 그녀 역시 배우와 가수 겸업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에서 처음 보는데 작고 동그란 얼굴에 전형적인 아이돌 엔터테이너를 연상시키는 외모지만, 영화에서 정말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면이 두 번 정도 나온다. 어지간한 연기 수업으론 이 정도 결과를 볼 수 없다. 지금까지의 모습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안 그래도 독특한 감수성의 <러브 익스포져>에서도 무지하게 특이한 역인 코이케 아야 역의 안도 사쿠라는 일견 '배우'처럼 보이지도 않는 외모지만 참 소화하기 힘든 역할을 해냈다. 사실 다른 배우로 이미 상당히 촬영이 진행된 후 가편집본을 본 감독이 이전까지의 촬영분을 모두 버리고 급거 추천한 배우가 바로 안도 사쿠라이고, 다시 촬영에 들어가기도 했다는 후문. 그만큼 그 어느 배우 못지 않은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알아두면 더 좋은 이야기: <여죄수 사소리>
남자 주인공인 유우가 맨 처음 요코를 만날 때는, 하필이면 여장을 한 상태. 난생 처음 '한눈에 홀딱 빠진' 여고생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는 것이 두려운 유우는 자신을 '사소리'라고 얼버무리며 현장(?)을 떠난다.




여기서 '사소리'라는 이름은, 일본에선 나름 유명한 영화 시리즈인 <여죄수 사소리>의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여죄수 사소리> 시리즈는 지난 1972년에 처음 나와 큰 인기를 얻으며 4편까지 제작이 되었는데, 영화 속에서 유우가 입은 특유의 복장(검정색 롱코트와 모자)이 바로 사소리의 복장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이른바 '블랙 스플로이테이션 무비'에 대한 일본의 대답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까 일단 흑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스토리는 다소 황당무계하지만 화끈한 액션과 에로에로한 장면을 적당히 집어넣어 인기를 얻은 B급 영화를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여죄수 사소리> 시리즈는 타이틀마다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감옥에 갇힌 주인공 사소리가 탈옥을 하여 자신을 짓밟은 남자들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B급 영화라는 소리.




덧붙여서 블랙 스플로이테이션 무비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정도에 꽤 인기를 끈 서브 장르이고, 비교적 최근에는 사무엘 L. 잭슨이 주연한 영화 <샤프트>의 원작(이 영화는 리메이크작이다)이 바로 대표적인 영화이며 과거에 블랙 스플로이테이션의 퀸이었던 팸 그리어가 출연하고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잭키 브라운>도 있다.


알아두면 더 좋은 이야기: 옴 진리교
옴 진리교(혹은 현지 발음으로 오우무 신리쿄, 현재는 알레프라는 이름으로 변경)는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사건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것 말고도 각종 납치와 살인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 단체.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이 옴 진리교도 일단 겉으로 내세우는 교리(거창하게 말하자면)는 그 문구만 들어선 나쁠 게 없다. 명상을 통해 스스로 성불(비스무리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며 나중에는 공중부양(!)은 물론 초능력(!!)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면 뭐, 그냥 안드로메다지만.



옴 진리교가 그냥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는 단순한 사이비 종교 단체에 머물렀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화학전 수준에 버금가는 독극물을 다량 보유하고 있던 것이 밝혀졌으며(그리고 실제로 테러가 행해졌으며), 이걸로 일본 검찰은 각종 범죄 혐의 외에 내란죄 혐의를 적용, 당시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에게 사형을 언도하기도 했다(아직 사형이 집행되진 않았다).

옴 진리교가 일본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만큼 부(富)를 쌓을대로 쌓은 경제대국 중 전세계에서 일본만큼 겉으로는 평화로운(?) 국가가 없다. 군대도 없고(일본에는 자위대만 있을뿐이다) 50년이 넘게 정권 교체는 이뤄진 적이 없으며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런 일본 사회가 고인 물이 썩듯이 내부에서부터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는 가장 대표적인 징후가 바로 옴 진리교 사건이었던 것이다. 전술했듯이 '일본 국민들이 이런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있을 때 일본 사회와 일본의 기성 종교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나'에 대한 고민과 자문이 시작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