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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놈놈놈: 보물 찾는 거만 신경 쓰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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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웨스턴 가운데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아마도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 하정우 나왔던 군대 영화 말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그 영화)'가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 왕년에 악명을 날렸던 희대의 살인자 머니는, 지금은 늙어서 총을 들 기력조차 없어 보인다.

이 늙수구레한 주인공을 내세워서 결국 감독은 20여 년 전에 바로 그 자신이 세웠던 금자탑을 스스로 허문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시가를 물고 번개 같은 총솜씨로 적을 소탕한 뒤 말 안장에 올라 홀로 쓸쓸히 석양으로 사라지는, 웨스턴의 주인공. 바로 그런 웨스턴의 주인공들은 어쨌든 살인자들이었고, 동시에 (대부분)범법자들이었으며, 무엇보다 죽음을 매우 두려워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각설하고,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이렇게 처절한 자기 반성이 있을 필요는 없다(그리고 있을 수도 없다). 2시간 반 동안 관객을 유쾌하게 만들 코믹 활극이라면 시치미를 뚝 떼는 일도 필요할 터.

차라리 애초부터 그냥 신나는 오락 영화라고 포장을 했으면 어땠을까. '쉬리' 이후, 한국 영화판에는 참 이상한 관례 같은 게 하나 생겼는데, '작정하고 만든' 블록버스터를 영화 자체와는 별로 상관도 없는 특정 요인(Factor)을 내부적으로 체화하려고 애쓰며, 마케팅 포인트로 잡는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랬고, '태풍'이 그랬으며, '디 워'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런 움직임에서 벗어난 영화는 '괴물' 정도 말고는 없다.

그렇게 자신이 없나? 왜 "우리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타임 킬링을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을 못 하나. 나라를 잃은 한탄을 굳이 대사로 읊어야 하는 이유 따위는 '놈놈놈'에 없다. 그저 뭔지도 모를 보물을 찾는 데에만 신경 쓰면 되는 건데.

그것만 갖고도 더 '재미있는' 영화는 될 수 있었을 텐데.

- 전체적으로 템포가 느리다. 따지고 보면 이야기도 별로 없는데.
- 정우성은 '카메라만 갖다 대도 그냥 그림이 나오는' 배우지만 아직도 대사가 어설프다.
- 송강호는 사연 있는 캐릭터가 '순식간에 되어 버린다'. 이건 배우만의 몫은 아닐 것.
- 이병헌이 최종 위너. 그 복근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 예고편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전부의 대부분은 예고편이다(?).
- 윤제문, 손병호, 오달수 등 능력 있는 배우들이 낭비되고 있다.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이 노래는 아무래도 '킬빌' 보단 '놈놈놈'에 훨씬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