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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거북이 달린다, 재미있다




거북이 달린다, 어제 밤 시사회를 보고 와서 적음.


김윤석, '원톱 스트라이커' 체제 구축의 신호탄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에선, 송강호나 최민식이나 이병헌 정도를 제외하곤 빅 & 스몰 조합의 투톱이나 윙포워드까지 가세한 쓰리톱 체제가 가장 안정적인 포메이션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제 김윤석이란 배우도 (지극히 제한된 배역에서의 이야기지만)원톱 스트라이커로 경기를 풀어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증명되었다.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만난다면, 김윤석은 향후 3~4년 동안은 한국영화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존재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만신전(Pantheon)에 경배를! 한국영화에 바치는 오마주

영화 초반, '현직' 경찰인 조필성(김윤석 분)이 불법 보도방 영업을 수사(?)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추격자'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뿐만아니라 꼭 언제 어느 땐가 "야, 4885, 너지?"하는 대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상황(의 연속). 별 볼일 없는 형사가 악으로 깡으로 신출귀몰하는 탈주범 송기태(정경호 분)를 추격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그런 기분은 더하다.

그리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내내 흘러나오는 이 '농촌 코믹 액션'은, 당연하게도 살인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사건의 강도는 한참 낮은 편이지만.

의외로 세련된 영화(?)

경찰이 주인공인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거의 항상 결정적인 부분에서 '열혈 경찰'의 앞을 가로막는 존재로 FBI가 나온다. 멀끔한 양복을 입은 요원이 척 하고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여기서부턴 연방 경찰이 맡겠습니다"라는 재수없는(?) 코멘트를 날리는 장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이는 당연히 미국의 실정법에 기인한 바가 크지만, 프로타고니스트에 맞서는 또 하나의 안타고니스트로서, 영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대상으로 광역수사대가 등장해서 열심히 삽질을 해주신다.

또한 영화에서 꽤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소싸움 이야기도 해야지. 소싸움이 벌어지는 모래밭의 특설 링(?)은 마지막에 주인공과 탈주범이 한 판 쎄게 붙는 장소가 되기도 하는데, 이와 같이 등가의 이벤트를 댓구법으로 연결하는 이야기의 배치 또한 꽤 세련된 연출이 아닌가.

촌티 풀풀 나는 '논두렁 액션'이 작렬하고, 등장인물 대다수가 충청도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마냥 촌스러운 영화인 건 아니다.

'호흡'과 '재치'의 영화

군데군데 늘어지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전체적인 '호흡'은 좋으며, 가끔 애드립으로 보이긴 하지만 배우들의 재치도 돋보인다.

거북이가 달려봐야 속도는 뭐 그저 그렇지.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분명히, 거북이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으며, 2시간이 지난 후 관객은 즐거워질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를 추천하지 않을 이유는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