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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바더-마인호프 콤플렉스(2008): 적들에 대처하는 21세기의 자세




바더-마인호프, 우리에겐 적군파(Red Army Faction, 줄여서 RAF)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독일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집단. 모름지기 좌파, 혹은 급진좌경세력이라고 하면 바로 이런 친구들한테나 쓰는 말이다. 북한이랑 친하다고 좌파가 아니라는 말이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이후 울리 에델 감독은 뭐하나 했더니 고향으로 돌아가 이런 깜찍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바더-마인호프 콤플렉스(Der Baader Meinhof Komplex, 2008)'는 60년대 후반부터 약 10여 년 동안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적군파를 다룬 영화다.

리더 안드레아스 바더와 그의 연인 구드룬, 그리고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같은 길을 가게 된 저널리스트 울리케 마인호프 등이 주축이 된 적군파의 존재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의 시대상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란의 팔레비 국왕이 독일(당시는 서독)을 방문했을 때, 그의 폭정에 반대하는 시위와 국왕을 찬양하는 관제 시위가 동시에 열리는데 곧 양 진영은 충돌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반대 시위를 하던 대학생 하나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숨진다.

이에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다. '돌 한 개를 던지는 건 단순한 폭력 행위지만 돌 천 개를 던지는 건 정치적인 행위'이고, '항의란 무엇무엇을 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것이며, 저항이란 무엇무엇을 못하게끔 하는 것'이란 모토 하에 무장을 하고선, 자본주의의 상징인 백화점과 우파 언론의 본사를 습격한다(조중동은 이거 보고 '착한' 우리나라 젊은이들한테 감사하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서독 정부와 경찰이 이들을 가만 놔둘 리 없다. 이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서독 국민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재등록 작업이 이뤄진다. '물을 전부 빼면, 물고기는 위로 뜨게 돼있다'는 논리로.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법이 시행되고 주민등록증이 만들어진 걸 쉽게 떠올리게 된다(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은 육영수 여사의 시해 사건 이후 남파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처음 도입됐으며, 그런 주민등록증 1호 발급자는 바로 박정희다).

어쨌든 경찰의 저인망식 작전으로 리더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원이 검거된다. 그룹을 이끌던 핵심 인물 중 하나는 경찰의 구타와 고문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고, 나중엔 리더 모두가 감옥 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약간 검색을 해보니 영화 전체적으론 거의 대부분 실제와 똑같이 구현되었는데, 마지막에 그룹의 리더들이 '실제로' 자살했는지의 여부는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타살로 보는 시각이 실은 더 많다고도 한다).

대략 40년 쯤 전 유럽의 젊은이들이 꾸었던 꿈은 서기 21세기 동아시아 구석에 있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뭔가가 있긴 하다. 그러나 적들은 더욱 완강해졌고, 동시에 더욱 교묘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적들이 벌이는 짓거리를 두고 저능아 같다느니 무뇌충이니 조롱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교활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적어도 해방 이후 수십 년의 시간 동안 이 땅에서 아직까지도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을 순 없었겠지.

머리에 꽃 꽂고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통기타 반주에 맞춰 포크를 부르거나, 정말 빡쳤을 때 직접 무장을 하고 나가 경찰서와 군부대, 조중동 같은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테러 행위를 벌이는 것이 40년 전의 방식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적들에 대처하기 위해선 더욱 이성적이고, 치열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시대는 바로 그런 걸 요구하는 시대, 21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