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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추노>의 마지막회에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누구나 예상했던 결말이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진행으로 봐서 <추노>의 결말은 이렇게 나야 옳다(고 본다). 이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을, 누군가는 바꿔보고자 했고 누군가는 본의 아니게 휩쓸렸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질펀한 인생에도 가치는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


"네가 그리워서 찾은 게 아니라, 난 그냥 도망노비를 쫓은 거야" (대길)

모처럼 단 둘이 있게 된 대길과 언년/혜원. 아직은, 아니, 어쩌면 영원히 이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어 보이지 못한다. 바로 과거의 그 사건 이후부터. 대길은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짐짓 언년/혜원에게 공허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그 속마음은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옛날의 도련님을 도련님이라 부르지도 못하는 언년/혜원은 그저 속으로만 삼킬 수밖에.

"우리같은 노비도 있었다는 걸 알려주면, 개죽음은 아니지" (업복)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연짱 출연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인물은 바로 업복이다. 그는 사실 '내 손으로 세상을 어떻게든 바꿔보리라'라는 식의 거창한 생각까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살아보겠다고, 노비 신분으로 도망까지 쳤던 인물로, 그는 '사람'의 귀중함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몸소 실천한다.

"이 땅에 빚이 너무 많습니다" (태하)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세자(봉림대군)의, '난 너를 죽일 용기도 없고 살려줄 힘도 없다'는 이야기로 이 사나이는 평생을 걸고 성취하고자 했던 무언가를 잃게 된다. 사실 청나라에 가면 뾰족한 수는 있나. 언젠가 대길이 했던 대사처럼 '세상 참 복잡하게 사는' 이 외골수는 마지막을 눈 앞에 두고서야 자신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정한다. 역시 그는 외골수다.

"바꾼대잖아. 이 지랄같은 세상" (대길)

이 지랄같은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는 대길일 수 있다. 태하는 일생 동안 자신의 신념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는 인물인데, 대길은 당대의 모순된 제도에서 신분의 급전직하를 겪으며 반토막의 인생은 거의 타의에 의해 강요된 삶을 살았던 것 아닌가. 그렇지만, 마지막의 바로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지랄같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음은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나의 역사니라" (인조)

처음엔 쥐뿔도 없는 인조가 청나라 사신 용골대 앞에서 그토록 고개 빳빳하게 들고 있는 게 좀 의아하긴 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시작은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일종의 꼭두각시였으나, 그도 엄연한 왕족이다. 정치에 있어서 양보는 죽음을 뜻한다. 이는 즉,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체화하는 편이 세상을 살기에는(?) 오히려 더 편리한 방법이란 것이다.

위의 저 대사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어쩌면, 흙이 들어가고 난 다음에도) 불가하다'란 말에 다름 아니다. 이건 인조가 아니라 그 누구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랑캐'는 애초 정치의 대상도 아닐진대 불온하게도 그들과 교류를 꾀했던 세자(소현세자)는 인조에게는 곧 종묘사직의 근간을 뒤흔드는, 다시 말하면 역모를 꾸민 세력으로 보였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장혁의 연기는 정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앞으로 대길 정도의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꼭 장혁이 아니라, 다른 어떤 배우라도 말이다. 방영이 연말에 가까웠으면 연기대상 정도는 100% 따먹었을 텐데. 극 초반 성동일과 후반의 박기웅은 최고의 조연이었으며, 이동혁도 마찬가지. 오지호와 이다해는 좋았던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별로였던 부분이 더 많았다.

이렇게 긴 호흡의 드라마를 처음 집필한 천성일 작가는, 원래 전업 시나리오/극본 작가는 아닌 것으로 아는데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갖췄으나 역시나 호흡 조절에 있어 주변의 도움을 좀 받으면 아주 훌륭한 드라마를 써제낄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20부작이 넘어가는 드라마의 메커니즘을 '전반적으로다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작인 <한성별곡>을 무지 인상 깊게 봤더래서 곽정환 PD의 능력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특히, 일종의 특수 카메라인 레드원을 사용한 것이 온전히 그의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드라마 방영 내내 이 '죽여줬던' 때깔은 앞으로 나올 대작 TV 드라마들의 가이드라인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