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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팀 버튼, 나이를 먹다




루이스 캐롤의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이 원작만큼 국내에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읽는 사람에 따라서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그 자체가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다. 기괴하고 음울하지만 한편으론 화사하고 생기발랄한, 총기가 넘치고 따뜻하지만 한편으론 냉소적이고 엽기적인 비전의 소유자 팀 버튼의 해석이 (무지하게)궁금했던 이유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각적 유희를 최근에 이만큼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 또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이 <아바타>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고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의 호흡은 때로 불규칙하고, 너무 분절적이다. 이래서야 짜릿한 테마파크 2시간 이용권을 끊어서 (순서도 무시하고)여기저기 들락날락했다는 기분밖엔 느낄 수가 없다.

팀 버튼이란 대단한 감독에게서 우리가 원한 건, 원할 수 있었던 건 분명 그 이상일 텐데 말이다.

물론 이 영화는 제목을 원작으로부터 그대로 가져왔고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 상당수가 원작에 등장하는 그대로 나타나는데 상당부분을 새로 구성했다. 우선 원작에선 13세 전후의 어린 꼬마였던 앨리스는 이제 결혼을 앞둔 19살 아가씨가 되었고(그래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당돌한 캐릭터라는 점은 그대로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이 아가씨의 '이상한 나라'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긴 팀 버튼은 이전의 <배트맨> 프랜차이즈에서도 그랬고 따로 원작이 있는 <슬리피 할로우>나 <스위니 토드>에서도 그랬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의지를 담은 콘텍스트적 해석을 즐기는 감독이긴 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팀 버튼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면, 이른바 주제의식이란 측면을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몇 안 되는 희귀한(?) 경우이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았던(생긴 것 말고 상상력이) 팀 버튼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까.

P.S 1: 몇몇 상영관에서 3D 상영을 하고 있는데 3D는 생각보다 별로인 모양이다. 2D보다 오히려 색감이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 하긴,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아바타> 이후가 아니던가.

P.S 2: '좋마운'이나 '날뜩한' 같이 낯선 자막이 등장한다. 이것은 루이스 캐롤이 스스로 만들어서 그의 원작에 등장시켰던 단어들을 그대로 대사에 집어넣었기 때문인 듯한데, 리스닝이 후지니;; 원래 어떻게 생겨먹은 단어인진 모르겠지만 생경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

P.S 3: 주연을 맡은 미아 워시코우스카의 마스크는 소녀와 숙녀를 넘나드는 묘한 매력을 담고 있다. 매드해터(미친 모자장수) 역의 조니 뎁과 카리스마 넘치는(!) 여왕 역의 헬레나 본햄 카터 또한 성공적인 캐스팅. 다만 앤 해서웨이는... 연기력 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