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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UEFA 챔스 결승 리뷰: 맨유의 패배 & 바르샤의 승리




1. 맨유의 패배

당연하게도, 박지성 및 여러 한국 선수들의 진출로 인해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유럽 리그가 된 EPL. 그 중에서도 박지성이 속한 맨유는 단연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등극했다.

8월 말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안방에 생중계되는 맨유의 경기를 거의 대부분 축구팬들은 즐겨 본다. 지난 3시즌 연속으로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맨유라는 팀의 경기력은 정말 막강하다! 일단 리그에서 가장 골을 많이 넣는(올 시즌엔 첼시의 아넬카가 득점왕을 먹었지만) 호날두가 있고 공격진의 다양한 포지션을 모두 소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의 루니가 있다. 그 외에도 유연한 베르바토프와 저돌적인 테베즈, 노련한 긱스, 헌신적인 박지성 등 많은 공격 자원이 있다.

하여튼 꽤 많은 경기에서 승리를 쌓은 맨유지만 패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렇게 리그 정상급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부지기수인 맨유가 패하는 경기를 보면, 공통점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맨유는 패하는 경기에선 공격부터 미들, 수비까지 거의 모든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의 경기 시간 내내 총체적인 난국을 보이며 굉장히 무기력하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막판까지 불꽃을 튀기며 박빙으로 치닫다가 결국 결승골을 쥐어 짜내 이기는 승부? 있었을 법도 하지만 맨유의 한 시즌을 지켜보면, 그런 경기는 거의 없었다는 걸 수긍하게 된다. 맨유는 이기는 경기에선 거의 90분 내내 모든 면에서 우월하지만, 지는 경기에선 완전히 반대다.

가장 최근 리그에서 패배한 '177번 째 장미전쟁' 리버풀과의 29라운드 홈 경기를 살펴보자. 이 날 경기에서 맨유는 전반 초반에 박지성이 PK를 유도해서 성공시켰을 때 정도까지만 주도권을 잡았을뿐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활발하고도 효과적인 리버풀의 꽁무니만 좇느라 바빴다.

요는 종종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며, 그것은 선수들 스스로가 '나는 리그에서, 그리고 전세계에서 최고'라는 자부심(물론 그들은 당연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컨트롤이라는 거지)에 기스가 났을 때 우왕좌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개인기만으로도 어지간한 수비벽을 펑펑 뚫는 선수들인데, 팀이 어려울 때 유기적인 팀플레이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긴 쉽지 않다. 경기가 안 풀리면, 시야는 좁아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맨유의 가장 강력한 공격 루트인 측면을 봉쇄한다는 맞춤 전술까지 상대방에서 들고 나오면, 맨유는 오늘 새벽의 결승전에서와 같이 지리멸렬하다가 '자멸'한다. 그런 점에서 09시즌 챔스 결승전은, 맨유의 패배다.

2. 바르샤의 승리

하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은 바르셀로나의 승리다. 이번 결승전 전에 맨유의 근소한 우세를 점쳤던 수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건 바르샤 수비진의 붕괴. 마르케스는 진작에 시즌 아웃됐고 아비달은 퇴장으로 결장이었다. 젊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을 보면서 감탄했던 건, 맨유의 측면 공격 루트를 정성들여 막을 생각을 안 한 대신(글쓴이는 그렇게 봤다), 시우빙요와 푸욜에게 오히려 적극적인 오버래핑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맞불 작전.

바르샤의 중앙에야 샤비 에르난데스가 건재하고, 이니에스타도 때마침 부상에서 돌아왔으니(이니에스타의 부상은 연막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평소대로만 해준다면 별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쓰리톱 공격진의 결정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리가의 수비진이 EPL보단 다소 헐겁다 하더라도, 앙리-에투-메시 삼각편대는 올해 70골을 넘게 쓸어담았고 팀 득점은 무려 100골이 넘었다.

다시 말하자면, 바르셀로나는 원래부터 그들이 잘 했던 부분을 더욱 강화시킨 결과가 승리로 나타난 것이다. 첼시와의 준결승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클럽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에투가 비디치를 살짝 벗겨내서 첫 골을 성공시켰을 때만 해도 '뭐 원래부터 저 정돈 했으니' 생각했는데 170도 안 되는 메시가 삐딱하게 점프해서 헤딩으로 두 번째 골을 따내는 장면을 보고는 잠이 확 달아났다. 헤딩은 키로 하는 게 아니다. 헤딩은 위치선정 싸움이다.

3. 과감한 과르디올라, 노파심의 퍼거슨

사실 과르디올라로선 잃을 게 별로 없었을 것이다. 올 시즌 처음으로 감독을 맡았고, 아직 워낙 젊은 나이니 다른 유럽 클럽의 팬들에 비해 쉽게 들끓는 편인 바르샤의 팬들로서도 그저 훌륭한 경기를 펼치기만 하는 것으로 보답은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리그하고 코파 델 레이(FA컵)까지 먹었잖나.

반면 노장 퍼거슨 감독은 긴 호흡으로 팀을 꾸리는 것에는 누구보다 능숙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가 봐도 명백히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데 이게 때때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그는 경기의 명암이 갈리는 순간에도 호날두를 결코 빼지 못한다. '한 방'이 있는 선수니 로스타임 때라도 터뜨리면 좋으련만, 호날두가 그렇게 한 경우를 보진 못했다.

4. 박지성, 더욱 성장하길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맨 처음 한국 선수가 뛰는 챔스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본 건 MBC ESPN을 통해 PSV의 이영표가 아스날의 피레, 륭베리를 막으며 분투했던 경기였다(아마 04 시즌이었을 것이고, 당시 박지성은 극심한 슬럼프로 경기에 나오진 않았다). 그냥 유럽 클럽 간의 경기도 아닌 '무려' 챔피언스리그다. 여기에서 뛰는 작은 체구의 한국 선수를 보고 있자니 정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그런 꿈의 무대, 챔스의 결승전에서 한국인 선수 최초로 선발 출장한 것이다. 이제 시즌이 다 끝난 지금까지도 소속팀과의 재계약 문제가 확실하게 결정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음 시즌에 어느 팀에서 뛰건, 혹은 맨유 소속으로 계속 뛰건 한 뼘 더욱 성장해서 뻘건 눈으로 새벽잠을 설칠 한국의 축구팬들을 즐겁게 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