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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구획짓기: 진격의 거인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지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와 같은 구분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단지 특정 정치세력(더 명확히 말하자면,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로 그 사람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 사람이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으며 어떤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궁극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그 어떤 상황'을 이룩하기를 원하는지, 혹은 '지금 그대로의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기를 원하는지를 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은 넓어진 프레임 안에서라야 어느 한 쪽 진영(?)이 절대선이고, 절대악이 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이 적지 않게 왜곡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현실에 부정과 불합리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과는 뭔가 다르고 새로운 그 어떤 것에 천착한다. 물론 그렇게 바꾸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생길 거고, 때로는 그 변화의 방향이 본의 아니게 엉뚱한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계산에 넣고 있는 진보주의자는,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매사를 수학적으로 사고하기 좋아하는 진보주의 안에선 노선에 따른 구분도 새로 생겨나는 일이 잦다. 근데 어떤 종류의 '이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 이렇게 마이너리티 리포트 안에서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는 광경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보수'라고 하면, 그 사람은 현재의 사회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그닥 느끼지 못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사회 안정'과 법치를 부르짖는다. 다만 보수주의자라면 기왕에 (정치)권력을 이미 쥐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더 오래토록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진보주의자는 이념으로 뭉치고, 보수주의자는 이익으로 뭉친다'고 한, 움베르토 에코의 말은 의미가 있다. 사실 그 말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 어떤 쪽이 (도덕적으로)우월하다는 설명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영악하다. 그들은 체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누구보다 명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합집산도 빠르다. 대중을 상대로 한 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아젠다를 구성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작업 자체가 좀 쉬울 수도 있겠다. 그들은 (정치)권력과 함께 미디어도 쥐고 있으니. 때로는, 미디어가 권력 자체가 되기도 할 정도.


그러면 남은 건, 싸움이다. 안타까운 것은, 다수 대중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장(?)에서 애꿎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피해란 것이 반드시 개인의 경제적, 혹은 육체적 피해일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에게 그닥 어울리지 않는(?) 그 어떤 이즘을 체득하고, 그것이 자신의 이상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피해는 피해다. 일종의 정신적 피해...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냐고?
바로 '진격의 거인'을 보고서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