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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의형제>를 읽는 몇 가지 키워드





1. 분단상황

<의형제>의 멋진 두 남자주인공, 이한규(송강호)와 송지원(강동원)은 각각 남한과 북한 정보당국의 요원들이다. 이 영화는 남북의 분단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에는 별 관심이 없다. <쉬리>만 해도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테마를 이 체제의 차이에 두고 있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보다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남자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한 가장 드라마틱한 설정으로 지금 우리나라의 분단상황을 가져온 것일 게다. 이 두 사람은 성별만 빼놓으면 연령대와 현재의 처지, 심지어는 체격조건과 인상까지도 모두 전혀 다르지 않은가.

사실 장훈 감독은 뭔가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 성향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오히려 그 쪽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긴 한다). 아무튼 <의형제>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그저 두 남자의 이야기이지, 두 국가, 혹은 두 정치체제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2. 서로를 인정하기

이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박스로 처리.



만약 <의형제>가 이 흥행 비수기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정말 많은 이들 사이에서 관심사로 떠오른다면, 정체불명의 예비군복 입고서 가스통에 불 붙이던 '열혈 노년'들은 이 영화를 두고 친북이니 용공이니 떠들어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아마 지금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3. 웰메이드와 범작의 간극

장훈 감독의 전작인 <영화는 영화다>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유려하게 잘 빠진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그렇지만 단점보단 장점이 두드러졌던 이 영화의 미덕은 단연 투박한 에너지와 에너지의 부딪힘이 이끌어내는 화학작용, 바로 그것이었는데 <의형제> 에서도 그 도도한 흐름은 이어진다.

그러면서 전작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매끈함'을 과시하기도 한다. 물론 그 상당부분은 전적으로 주연인 송강호의 순발력이 뛰어난 연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보이지만 촬영 현장을 통솔하고, 편집을 통해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등의 작업까지 온전히 연출자의 몫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만큼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화면의 질감이나 미장센, 전반적인 스케일의 측면 등을 보자면 소위 '웰메이드'라고 부르기가 살짝 민망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단순히 시나리오나 원작 소설을 카메라와 배우로 구성된 비주얼로 2시간 동안 보여주기만 하는 그 무엇은 아닐 터. 영화는, 영화인 것이 당연하지만 영화 이상이 될 수도 있다.


4. 기타...

<의형제>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단역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캐스팅 과정도 궁금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들이 갖고 있는 위치와 고민, 그에 대한 질문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덧붙여서, 영화에선 북한 출신이며 국제적으로 암약하는, '그림자'라는 코드명의 킬러가 등장한다. 검색을 해보니 연극무대 출신인 전국환이란 배우인데 많은 영화에서 조역으로 주로 출연했던 모양. 근데 그가 내뿜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이렇게 출연 분량은 얼마 안 되지만 적어도 등장할 때만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캐릭터(그리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배우)를, 대부분의 감독들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