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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소설도 보고 영화도 보고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정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여피(Yuppies)'라는 말이 (본토인 미국에선 물론이고)우리나라에서도 꽤 유행했다(물론 우리나라의 여피족은 그보단 좀 뒤에 나타났다). 수입은 많고 나이는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이들 사이에서의 유행이란 게 초고가 명품을 걸치거나 최고급 식단을 향유하는 것, 운동으로 신체를 가꾸는 것 등이었다.

겉으로 보면 남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이들이 맛보는 (거의 유일한)어려움이라면, 이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일생동안 한번도 고소득을 경험하지 못한 내 생각으론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식의 '나와바리'가 형성되면 대개 거기에서 발생되는 문제란 게 그런 거였으니 그저 짐작만 할뿐이다.

이런 여피족들의, 정확히 말하자면 구역질 나는 물질주의가 판치는 지금 사회의 오만과 탐욕과 부조리함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브랫 이스턴 엘리스 저 <아메리칸 사이코>와, 이의 영화화 버전(?)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잠시 머뭇거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생한 표현과 잔혹한 묘사에 있어서는 거의 신기원(?)을 이룬 작품이 바로 이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라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런 부분으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 <살육에 이르는 병>을 보면서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지경'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선, 더하다(사실 이 작품은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판매금지를 먹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온라인서점에서 구매는 가능한데, 아마 지금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풍자'와 '고발'이라는 측면에서 그 효과는 단연코 뛰어나다. 다만 모든 이에게 권할 만한 작품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크리스찬 베일이 타이틀 롤을 맡은 영화에서, 그는 그냥 소설 속 패트릭이 된다. 때로는 극도로 불안했다가 때로는 무지하게 야비했다가 때로는 어린애 마냥 절절 매다가 때로는 철판을 깐 얼굴이 되는 이런 역을 연기하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은데, 잘 소화해냈다(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루머가 아닌 듯하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바쁘면 바쁜대로 늘 똑같아서 뭔가 커다란 임팩트가 될 만한 대상에 빠지고 싶다면, 권한다. 다만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할 것.

딱히 <아메리칸 사이코>만이 아니라, 원작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면(감상하는 순서는 논외로 하고), 아무튼 각각의 작품에서 느끼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