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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

다크나이트 라이즈: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전작인 '다크나이트'가 개봉했던 해는 2008년. 그러니까 실제의 시간으론 4년이 지난 건데 영화 안에서는 8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굳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의 시간과 영화 속 시간 사이의 간극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회귀, 혹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 이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매일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뒤에 더 자세히.

 

자신의 모든 걸 바쳐서 고담시를 구하는 와중에 연인마저 잃게 된 과거의 '흑기사'는, 확실히 매사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듯하다. 그럼에도 새롭게 창궐한 악에 맞서 분연히(?) 다시 일어서는(RISE) 모습은 심지어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 보면 서양 문명이 천 년도 넘게 그토록 사랑했던 드라마투르기, 즉 예수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물론, 약간 호들갑스러울 수 있는 이와 같은 해석이 혹자에겐 거북할 수도 있겠다. 인정한다).

 

 

 

 

 

어둠에서 태어난, 흑기사와는 이복 형제라고도 할 수 있을 악의 상징 베인은 핸드마이크를 잡고 군중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Take control of your City!' 이 장면을 보고서는, 작년 가을에 있었던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를 연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고담시의(그리고, 전세계의) 불합리한 지배 구조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많으며, 영화 속 악당인 베인은 그저 촉매제(Trigger) 역할만 했을뿐, 흑기사가 와신상담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고담시를 '저 지경'으로 만든 건 그냥 평범한 고담의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또 고담 시민들을, 스스로 악당의 부하가 되어 버린 못된 넘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번째로... 또 다시 조금은 호들갑스러워 보일 수 있는;; 해석이 존재할 의미를 갖게 된다. 4년(영화 속에선 8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그리고 세상 살이는 너무나도 팍팍해지고 신산해지고 강퍅해졌다. 지금은 '순수 악(Pure Evil)'이니 하는 고담준론이 필요한 세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 추상화보다는 구상화, 모더니즘보다는 리얼리즘. 그래선지 베인은 마치 혁명군의 지도자처럼 보이고, 또한 배트맨은 시리즈 사상 가장 처참하게 얻어 터진다(!).

 

이 기나긴 영화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꼽자면, 단연 클라이막스의 경찰과 시위대(아니, 용병/점령군과 경찰/반군)가 맞서는 장면일 터.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이 장면은, 3시간 동안 코믹한 요소라곤 찾아보기가 힘든 이 영화에서 (관객에 따라 다르지만)거의 포복절도할 유머일 것이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하곤 별로 잘 어울리지 않는 반전이라든가 뜬금없어 보이는 멜로 라인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와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럼에도 안 보고 지나치면 반드시 후회할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작 중 다크나이트보다는 배트맨 비긴즈로부터 연결되는 부분이 더 많다. 가능하면 비긴즈를 복습하고(?) 영화를 볼 것을 권한다.

 

뱀다리: 톰 하디는 체중을 엄쳥 불렸군. 개인적으로 앤 해서웨이는 썩 좋아하질 않는데 캣우먼 역에는 잘 어울렸다고 본다. 그리고 조셉 고든 래빗 정도의 배우가 그냥저냥한(?) 배역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왜 진작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