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추노>의 방영분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장면은, 도망 노비 신세이던 송태하와 언년/혜원이 기어코 혼례를 올리는 장면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제주도에서 구출해온 왕손을 두고, (명백히 현 정권을 무너뜨리는 혁명을 노리는 이들이)'세자 저하'라고 칭하는 장면이었다.
정확한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바로 그렇게 무인들과 문인들이 합심한(?) 혁명 세력의 일선에 선 장수 송태하가 무려 보수주의자라니?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시라.
따지고 보면 진정으로(?) 성공을 거둔 혁명 세력은 바로 당시의 왕실이었다. 쿠데타로 광해군을 몰아낸 이들이 바로 서인 세력이고 이들이 내세운 인물이 바로 인조.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조반정이다.
물론 광해군에서 인조로 이어지는 당시의 왕실에는 조금 더 복잡한 세력장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내내 대립각을 세웠던 '왕권파'와 '신권파'에서 송태하는 전자에 해당하는 인물. 이것은 바로 목숨을 걸고서 제주도까지 가서 그 어린 '세자 저하'를 모셔온 것에서 알 수가 있다. 송태하는 '혁명'을 하려 하지만 '개혁'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개혁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어떤 점에서는 "세상을 바로잡아야지"라는 대사를 읊은 대길 또한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테고 언년/혜원의 캐릭터가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지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란 점에서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테지만 이건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그것보다 더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바로 지금 보수주의를 논하고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을 생각하고 송태하를 생각하니,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는 것.
개인적으론 지금의 집권 세력과 그 떨거지들은 보수주의 근처에도 못 가는 그냥 기회주의자 + 수구꼴통 콤보 세트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백 번 양보해도 그들을 '개혁 세력'이라고 부를 여지는 전혀 없으니 일단은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해보기로 하자. 외세의 침탈에 맞서서 자신의 이상을 굳건히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길 한가? 아니면 스스로 내세울 만한 대의가 있길 한가? 하다 못해 맹목적인 소속감으로 똘똘 뭉쳐있기나 한가?
그 어느 것도, 지금의 소위 보수주의자들이라고 칭할 수 있는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는 것들이 아닌가?
<추노>는 매우 영리한 드라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느니 이미지 과잉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마치 <무한도전>이 촘촘하게 얽히고 설킨 '무도식 버라이어티 정신'과 코드로 무장하고 지금의 세상에 따끔한 풍자를 하는 것처럼 <추노> 또한 뜯어볼 가치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