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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즈 칼리파에 관한 잡다한 이야기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高)의 건축물, 부르즈 칼리파(구 버즈 두바이)가 우리나라 시간으로 엊그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에서 개장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사실 본격 영업일로 따지면 진작에 시작되긴 했다. 이전까지 초고층 건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던 타이페이 101이나 윌리스 타워 등과는 달리 부르즈 칼리파에는 사무공간 외에도 실제 사람들이 먹고 자는 주거공간(아파트)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아파트가 공사 도중에 이미 분양이 전부 완료된 걸로 보면, 그렇다.

문제는 이 분양 전부가 실수요가 아니라 임대수요라는 것. 물론 그 외의 사무공간도 아랍에미리트연합, 정확히 말하자면 두바이에 불어닥친 모라토리움의 한파로 인해 공실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전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한 랜드마크가 된 이 건물을 한국 기업이 세웠다고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 부르즈 칼리파에 대한 몇 가지 잡다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1. 정확한 명칭

개장식 직전까지도 모든 한국의 언론에선 이 건물을 '버즈 두바이'로 불렀다. 그러다가 개장식에 참석한 두바이의 셰이크 모하메드 최고 통치자의, "이 프로젝트는 위대한 인물의 이름을 붙여 부르즈 칼리파로 한다"는 단 한 마디;;에 이름이 바뀌어 버렸다.

우선 '버즈' -> '부르즈'가 된 스토리. 이전까지의 이름 앞에 붙었던 버즈(Burj)는 아랍어로 '탑'이란 뜻인데 이를 영어식 표현으로 간단하게 부른 것이다. 한글의 표기에 있어 현지의 발음을 존중한다는 중요한 원칙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이전부터 부르즈라고 읽었어야 맞다(지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C.호나우두의 이름을 영어식인 '로날도'가 아니라 포르투갈어 발음인 '호나우두'로 표기하고 읽는 것과 같은 원칙).

그리고 두바이가 칼리파가 된 스토리. 알다시피 작년 연말에 아랍에미리트연합은(정확히 말하자면 두바이는), 쉽게 말해서 폭삭 망했다. 이 와중에 부도수표 남발했던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연합이란 토후국의 맹주인 아부다비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데 바로 그 아부다비의 최고 통치자이면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대통령인 칼리파 대통령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바로 이 양반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다.
정식 이름(?)은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 건물 높이만큼 이름도 기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알아서 긴' 걸로 보면 되겠다. 그건 그렇고 이게 외국어라서 좀 그럴싸해 보이는데 한국식으로 따지면 '홍길동 탑'인 것이다. 뭐 이리 썰렁 -_-


2. 높이와 층수, 그리고 내부 구성(?)

지금까지 알려진 부르즈 칼리파의 정확한 높이는 무려 828미터. 예전에 학교 때 체력장 종목 중 오래달리기가 1천미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운동장을 몇 바퀴 돌던 그 거리가 수직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하면... 이건 까마득함을 넘어 현기증이 돌 기세.

그렇지만 이 높이 전부가 사무공간이고 주거공간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일단 층수로 따지면 총 162층인데 최상단 부분은 건물 내에서 각종 전자기기를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한 전파 송수신 시스템에다가, 다분히 '자존심'으로만 나타나는 수치인 모양뿐인 기둥이 올라가 있다.

그리고 1층부터 39층까지는 '아르마니'란 이름의 호텔(아직 개장 전이고 현재 인테리어 공사 중. 정식 개장은 올 3월), 40층부터 108층까지는 아파트(총 1,044채. 입주는 다음 달부터), 109층 이상은 사무공간으로 채워진다.

현재까지 부르즈 칼리파 내부에서 일반인이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은 124층의 전망대뿐이다.





3. 삼성에서 지은 부르즈 칼리파?

부르즈 칼리파의 시공사 컨소시엄 중에 '삼성건설'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있는데, 삼성그룹에서 건설 부문이 왜 계열사로 따로 없는지, 그에 대한 해답.

삼성종합건설이란 회사는 분명히 있었다. 삼성그룹이 다른 계열사들을 성장시키고 관리하는 바로 그 방식 그대로, 지난 1977년에 통일건설이란 회사, 신진개발이란 회사를 인수/합병하면서 삼성종합건설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지난 1993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부산 구포역 시설 건설 중 붕괴사고(사망 78명, 부상자 163명)를 겪으면서 사장은 무려 구속되고 법인 영업 정지 6개월을 먹었다.

혹자는 이 사건으로 화가 단단히 난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이 삼성건설을 '없애버렸다'고도 이야기하는데, 동네 구멍가게도 아닌 회사를 하루 아침에 날려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게다가 건설 부문은 상당히 짭잘한 수익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삼성물산의 건설 부문으로 흡수시킨 상황이 된다(참고로 삼성물산 내에는 당연히 건설 부문 말고 다른 부문도 있지만 사실상 삼성물산은 건설 부문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래미안'의 네임밸류를 생각해 보라!).

아무튼 부르즈 칼리파의 시공은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이 속한 컨소시엄이 담당했는데, 건물의 최초 설계는 미국의 건설회사인 SOM이란 곳에서 맡았다. SOM은 부르즈 칼리파 외에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있는 알 라지 은행 본관, 역시 두바이에 있는 인피니티 타워(2011년 완공 예정), 하바드대 과학관,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기아자동차 디자인 센터 등의 설계도 맡은 회사.


4. 부르즈 칼리파의 미래?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현재 채무 지불 압박을 받고 있는 두바이로선 부르즈 칼리파가 한 자락 희망이 될 수도,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속 빈 강정(이라기보단 너무 큰 건물;;)이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 쪽, 그러니까 부르즈 칼리파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부르즈 칼리파 주변의 부동산 가격은 최고치에 달했던 지난 2008년에 비하면 반토막이 났고, 전술했듯이 부르즈 칼리파의 분양은 상당 부분 실제 주거보다는 투자의 목적이 컸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형 상가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A4 용지 뒷면에 매직으로 휘갈긴 '임대' 글씨가 붙어 있는 광경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부르즈 칼리파 같은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그 나라의 경제가 전에 없는 불황을 맞이한다는,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라는 흥미로운 속설도 있다. 미국 뉴욕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선 것이 지난 1931년인데, 곧바로 미국과 전세계는 경제 대공황의 암흑기로 접어들었고 또한 지난 911 사태로 잿더미가 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뉴욕에 들어선 1970년대엔 오일쇼크가 있었다. 그 뿐인가. 부르즈 칼리파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지난 1998년에 완공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때는 아시아의 외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이렇게 수치상으로도 명백하게 보이거니와 어떻게 보면 그저 관습적인 징크스에 불과한 이야기도 돌아다니지만, '21세기의 바벨탑'이란 부르즈 칼리파의 별명 또한 그리 상서롭지 못한 것처럼도 보인다. 신에 도전한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말지 않았던가.



부르즈 칼리파, 과연 21세기의 바벨탑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