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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달력 by 장용민




예전에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꽝이었지만, 저 제목이 조금 유명해진 건 영화의 덕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는 시나리오로 먼저 시작이 되었고, 영화화가 된 이후에야 소설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팩션(Faction)'이란 장르가 원래 한국에선 빛을 발하기가 원래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양의 역사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교의 역사이고, 유일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수천 년도 넘게 이어졌다. 그런 만큼 그 믿음이 흔들릴 만한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거나, 아니면 그런 유일신을 과학적으로 검증(최근 미국산 팩션에서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보인다)하려고 하는 일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당연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모든 민족 구성원이 동일한 수준의 믿음(종교와는 다른 의미에서)을 가진 적은 별로 없다. 아마도 내내 큰 영향을 받은 중국의 주인이 계속 바뀌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런 상황에서, 한국 문학사를 통털어 가장 드라마틱한 인물인 천재 시인 이상의 작품을 소재로 하고 그가 살아있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팩션이 아주 신선했던 것이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소설에 비하면 훨씬 떨어진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저자 장용민이 다시 팩션을 들고 돌아왔다. 제목은 <신의 달력>. 이번엔 배경이 한국이 아니라 아예 지구 전체라고 볼 수 있다. 예정된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세상,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사람...

독실한 신자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신을 부정하고 저주하게 된 전직 역사학과 교수가 있다. 지금 그는 이혼 서류에 도장이나 받으러 다니는 삼류 사립탐정이 되었는데, 어느 날 한 여인이 그에게 사람을 한 명 찾아달라고 하는 의뢰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차저차하여 주인공 탐정은 무려 백지수표(!)를 비용으로 받고서, 최종 의뢰인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딱 그 부분을 읽을 때가 새벽 3시 정도였을 것이다. 잠이 확 달아나면서, 과장 없이 온몸에 전율이 짜르르 흘렀다.

"내게 신을 데려와주게"

이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

<신의 달력>은,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 키워드로만 리뷰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담백하다.

우선 스케일이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소설을 보면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한데... 전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도 그렇지만, 아예 세상의 종말이라는 화두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박진감이 넘치고 생생하게 전개된다. 사실 1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2권은 그보단 조금 처지지만, 그래도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꼭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론 어차피 뻔한 이야기 늘리고 늘리기 일쑤인 댄 브라운보다 몇 배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데, 단점 또한 똑같은 위치에서 발견된다. 다 보고 난 다음 드는 생각은 정말 할리우드 영화같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인 작가가 쓴 원작(소설)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되는 광경을 보게 된다면 참 희한하겠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미 하나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소설 작품으로 강추!


신의 달력.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용민 (시공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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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달력. 2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용민 (시공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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