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SP> by 가네시로 가즈키





주인공이, 애초부터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걸 이용해서 모든 사건을 깨끗하게 해결한다..는 건 사실 대중문화 컨텐츠에서 아예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질 않는다. 주인공의 앞길이 양탄자처럼 평탄하면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대입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예컨대 악당, 그리고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 여러 가지 갈등 요소 등등등.

하다 못해 '외계인'이며 지상 최강의 히어로인 슈퍼맨조차 크립토나이트 앞에선 허약해지지 않던가.

희한하게도 예지 능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테러리스트의 암살 위협에 놓인 VIP를 경호하는 비밀 경찰 비스무리한 걸로 활약한다는 이야기란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능하네.

처음에는 <GO>와 <레볼루션 No.3> 등과 같이 전력질주하는 청춘물로, 나이를 좀 먹은 최근에는 <영화처럼> 같이 관조하는 작품으로 우리 곁을 찾은 가네시로 가즈키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도 본업인 소설로서가 아니라 드라마 각본으로!

정말 의외였다.

가네시로 가즈키가 집필(책에서 그는 이것이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드라마 연출진을 비롯한 모두의 공동 작품이라고 밝히긴 했지만)한 <SP>는 실제로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케이블 채널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고.

어렸을 적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주인공 이노우에는 어쩌구 저쩌구 하여 VIP 경호 임무를 전담하는 비밀 경찰 조직 SP(Security Police)에 들어가게 된다(이 조직은 일본에 실재한다고 한다).

물론 맨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공이 아예 초능력자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지만 이 드라마(각본)는 이노우에가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막아내는 활극이 전부가 아니다. 주인공이 능력을 갖게(각성하게?) 된 계기, 절대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되는 비밀 임무 수행의 아이러니, 그리고 반전.



확실히 가네시로 가즈키는 스스로가 액션/스릴러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세련된 묘사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호흡이 탁월한 작가다. 이제 드라마를 봐야 하는데, 좀 찾아보니 드라마는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그렇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활자의 집단이 시각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누구라도 궁금해질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미리 말을 하자면, 출판사 북폴리오는 국내 출판된 가네시로 가즈키의 모든 작품 표지를 참 예쁘게 꾸미고 있는데 <SP>의 표지도 귀여운 일러스트로 도배가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SP>는 그렇게 귀엽거나 코믹한 내용만 가득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