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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세계 축구의 흐름에 부응하길 바람




어제 날짜로 2010 남아공 월드컵의 남은 지역 예선 경기에 나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아시아 존에선 언제나 껄끄러운 상대들인 북한, 사우디, 이란 등의 틈바구니에서 조 1위를 달리고 있고, 남은 3경기 중 2경기가 홈에서 열리는 등 현재까지의 성적만 놓고 보면 2010 남아공 월드컵 출전 자체는 사실상 무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어쨌든 그런 대표팀 명단에, (특정 몇 경기에서의 몰아치기가 작렬하긴 했지만)리그 득점왕을 달리고 있는 이동국이 빠졌고, 선두 전북과 승점은 같지만 골득실에서 뒤진 2위 팀 광주의 두 날카로운 창 김명중과 최성국이 빠졌다. 이동국과 최성국의 경우, 허정무 감독이 언제나 이야기하는 대표팀 발탁의 가장 큰 근거인 '현 소속팀에서의 활약'이 이토록 출중한데도, 그랬다.

그 이유는 뭘까. 이는 두 선수의 기량이 예상보다 떨어져서도 아니고, 개인적인 호불호에 의한 건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현대 축구 흐름의 변화를 읽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적지 않은 축구팬들이 말하는 바, 허정무 감독은 아무 생각이 없다고들 하는데 뭐 꼭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최근 1년 넘는 기간 동안 대표팀은 아시아에서도 비교적 전력이 낮은 팀들과만 붙었지만 어쨌든 기간 동안 패배가 없고 맨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팀들이 속한 조에서 1위에 있으니.

자, 그렇게 이야기하는 현대 축구 흐름의 변화, 특히 공격에서의 변화란 어떤 것일까.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몰락



이제 대부분 막을 내린 08-09 시즌 유럽의 3대 리그 득점왕들을 살펴보자. EPL은 맨유의 호날두와 첼시의 아넬카가 공동으로 1등이고, 라 리가에선 바르셀로나의 사무엘 에투, 세리에A에선 인테르의 즐라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스스로 골을 '만들어서' 넣을 줄 아는 선수들이다. 최전방에 멀뚱히 서서 '차려주는 밥상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선 골을 '만들어서' 넣는다는 표현이 중요하다. 정통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반 니스텔루이나 비에리 등을 꼽는데, 이들이 맹활약했던 90년대에 세계적인 축구의 흐름은 경기의 템포가 이전 시절과 비교해서 상당히 빨라졌고, 미들과 수비진에서 전방으로 넣는 패스의 템포 또한 자연스레 빨라졌다.

당연히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가장 결정적인 찬스를 (비교적 손쉽게. 아니, 그보다는 '발이 쉽게')만들 수 있는 '타겟'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트렌드도 이젠 지나갔다. 경기의 흐름은 더욱 빨라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계적인 훈련 방법이 발전하고 그에 의해 선수들의 '전투력'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데, 축구의 경우엔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경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 하나의 장비, 공. 축구공은 지난 기간 동안 엄청난 투자에 의한 연구로 더욱 가벼워지고, 탄성은 더욱 좋아졌다.

그런 이유로 어디까지나 과거의 시각에서, 엄밀히 따지자면 공격 자원으로 인정을 받지도 못했던 윙 플레이어들이 직접 골 찬스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심지어 직접 골까지 따내는 경우도 많아진 것이다. 리그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반 니스텔루이를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내친 퍼거슨 감독의 행동에까지 생각이 닿으면, 정말 이 노인네가 굉장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다시 돌아와서, 이동국이 현재 K리그에서 득점왕이긴 하지만 상대팀 입장에서 봤을 때 전북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 옵션은 아니다. 오히려 루이스, 에닝요, 최태욱 등 사실상 윙포워드와 중앙을 모두 넘나드는 자원들이다(이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있다. '스포츠토토 선수랭킹'경기가 끝나고 코칭스태프들이 상대팀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가 누구였는지를 체크해서 정리하는 리스트인데 1위는 전북의 루이스, 2위는 인천의 유병수다).

국내 리그에서보다는 A팀이 맞붙을 때 조금은 더욱 높은 수준의 경기가 벌어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이동국의 탈락 또한 (개인으로선 아쉽겠지만)당연한 것이고, 바로 그것이 현대 축구의 흐름인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의 선수단 구성이 그런 현대 축구의 흐름에 부응한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풍부한 윙포워드 자원: 행복한 고민 속, 최종 낙점은?

원래 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발이 빠른 윙포워드 자원이 풍부한 편이었다. 멀리는 차범근부터 변병주, 이태호 등이 오늘날의 개념에서 보면 모두 공격형 윙어였다. 뭐 최근에는 이천수 등이 있었고(글쓴이 개인적으론 이동국이나 최성국보단 이천수의 탈락이 더 아쉽다. 이에 대해선 뒤에 자세히).

어제 발표된 리스트에는 미드필더로 포진해 있지만 유사시(쓰리톱 가동 시) 포워드진으로 나설 수 있는 선수들은 박지성, 최태욱, 배기종 등이 있고 애초부터 포지션이 FW인 이근호, 박주영, 신영록, 양동현, 유병수 등까지 포함하면 사실상의 공격 자원은 무려 8명이나 된다. 리스트 전체에서 골키퍼를 제외하면 절반도 넘는 인원이다.

최성국은 A팀의 일원으로 나설 때에는 한계가 명백하다. 찬스를 만드는 능력에선 최근의 최태욱이나 박주영에 떨어지고, 전체적인 밸런스의 안정감에선 박지성과 비교할 수가 없다(하긴 밸런스 측면에선 현재 리스트의 누구도 박지성과 비교할 수가 없다). 결정력으로 따져도 이근호나 유병수에 밀리며, 만에 하나 펼쳐질 고공 플레이에선 말할 것도 없다. 경험을 쌓는다는 차원에서도 어중간한 나이. 그럼에도 최성국은 분명 리그에선 굉장히 우월한 공격 자원이고 무엇보다 현재 이등병이니(^^) 개인으로서도 이번 탈락이 그리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실 그보단 위의 리스트들 가운데 허감독의 최종 낙점을 받게 될 공격수가 누가 될 건지에 대해서 더 관심이 쏠린다. 특별한 부상만 없다면야 박지성은 당연히 0순위고 최근의 경기 감각으로 보면 일본에선 '신(神)' 소리까지 듣는 이근호와 팀에서 애들 가르치느라 고생하는(;;) 박주영이 안착할 것 같다. 여기에 4-4-2 포메이션으로 보면 미들진에서도 가운데엔 아무래도 조원희나 김정우.

미들과 공격진을 오가는 (사이드)요원이라면 사실 김치우와 '쌍용' 이청용/기성용과도 경쟁해야 한다. 일단 왼발이라는 특화된 무기가 있는 배기종은 최소한 교체 명단에는 이름을 올릴 것 같고, 빠른 돌파에 결정력과 능력 검증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점에서 최태욱도 유리하다. 전반전에 크게 앞서고 있거나 할 땐 몸빵형 탱커로 신영록을 한 번 정도 기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기대를 모았던 유병수는 사실 형들로부터 훈련 시 조언을 얻는 정도에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양동현은 부상이나 안 당하면 다행(-_-).


개인적인 아쉬움: 이천수와 설기현의 부재



이하의 내용은 다분히 개인적인 내용인데, 이번 대표팀 명단에 이천수와 설기현이 탈락한 게 아쉽다. 이천수야 허감독이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건 뭐 축구팬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천수가 정말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2005년 전후 리그를 종횡무진 누볐던 수준으로 활약하기 전까진 대표팀 승선은 난망할 것 같다.

설기현의 경우, 현재 사우디 클럽인 알 힐랄에서 뛰면서 나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중이라 더욱 아쉽다. 대표팀의 남은 경기가 UAE, 사우디, 이란 등으로 중동 팀들과 맞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모종의 정보를 조금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기현도 따지고 보면 대표팀에 넘치는 윙포워드 자원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꽤 긴 포스팅이 됐는데, 요약하자면 어제 발표된 대표팀 명단은 현대 축구의 흐름에 부응한 것으로 보이며(그렇게 믿고 싶으며), 수비진보다는 공격진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부디 남은 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해서 대표팀이 당면한 가장 큰 목표인 월드컵 진출을 이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