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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저격수의 고백 by 존 퍼킨스



여기 한 사채업자가 있다. 원래부터 갖고 있는 자본이 풍족한 그는 공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며 사업을 키워나간다.

다른 사채업자들이 (예비)채무자의 지불 능력, 그러니까 결국 꾼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처럼 그도 마찬가지인데, 그에겐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그는 누가 봐도 찢어지게 가난해서 오히려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없을수록 선선히, 더 많이 빌려준다.

지금 마이크로크레딧이나 사회연대은행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정말 악랄한 독종이어서, (예비)채무자가 평생을 가도 못 갚을 돈을 왕창 빌려주고, 그 댓가로 신체포기각서를 쓰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악랄한 사채업자란, 바로 미국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지금도 백주대낮에 국제 사회에서 행하는 짓거리는 위에 이야기한 것과 사실 똑같다. 이 사채업이라는 것에 '연방준비은행' 혹은 '국제통화기금'이란 고상한 명찰을 달고 있다는 것뿐.

여기에서 궁금해지는 건 바로 책의 제목에도 나오는 '경제 저격수(Economic Hitman)'라는 존재다.

명목상으로는 민간 기업 소속의 경제 컨설턴트지만 사실상 미국의 국가안전보장국(NSA) 소속인 경제 저격수들은, 가진 건 풍부한 천연 자원(주로 석유)밖에 없는 제3세계 국가들(과 그곳의 권력자들)을 상대로 '작전'에 들어간다.

경제 저격수들은 극도로 부풀려진 온갖 근거들을 토대로 해서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 내용은 해당 국가의 경제가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예컨대 거대한 전력 공급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운을 띄우는 것이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이와 같은 시설의 발주는 미국 기업에 돌아가게 되는데, 미국으로부터 '나간' 차관은 미국 기업을 통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미국은 이렇게 앉아서 돈 놓고 돈 먹는 장사를 하면서 해당 국가들에 (거의)영원한 정치적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하며 '세계 제국'으로 나아간다.

경제 저격수들의 공작이 항상 성공만 한 건 아닌데, 그럴 때를 대비하는 '더욱 강력하고 즉각적인 수단'도 있다. '자칼'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그 이름에서도 쉽게 연상할 수 있겠지만, 물리력이며 사실상의 암살 조직. 카터 대통령과 독대해서 파나마 운하의 지배권을 가져온 파나마의 토리호스 대통령은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에콰도르에서는 미국 정유회사와 맞선 롤도스 대통령이 역시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때로는 아예 군사력도 동원한다. 미국은 파나마의 권좌에 자기들 스스로 앉힌 노리에가를 다시 내쫒기 위해 해병대를 투입했고,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고분고분하게 미국 말을 듣지 않은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렇게 음험한 세계에 몸을 담았던 존 퍼킨스라는 이름의 미국인이 위와 같은 내용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인도네시아, 파나마, 에콰도르 등 세계 각지를 돌며 작업한 다양한 내용이 나오는 책의 전반부는 흥미진진한데, '회사'를 그만 두고 나온 이후에도 당시에 알게 된 지인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갖는 내용이 대부분인 후반부는 상대적으로 약간 심심한 감이 없잖아 있다.

경제 저격수의 고백을 읽기 바로 전에 다 읽은 책은 바로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은, 전체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이야기인 브이 포 벤데타(바로 그 영화의 원전)이다.

책 선정도 어쩌면 이렇게 절묘한 건지. 진짜 테러리스트라도 되어야 한다는 이야긴가.



경제 저격수의 고백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존 퍼킨스 (황금가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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