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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흥미로운 일본 만화 이키가미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국가, 혹은 지배권력의 이상을 국민 개개인의 이상과 일치시키는 전체주의의 말로가 좋았던 적이 없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가 가장 최근에 한꺼번에 맞붙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 중 독일과 일본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들이 결국 어떤 길을 갔는가?

그리고 일본은, '왕권'이라는 형태로 상당히 구체화된 경우 외에도 '혼네/다테마에'라는 특유의 국민성에 힘입어(?) 개인보다는 동질성을 찾을 수 있는 집단 안으로 희구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뭐, 우리나라라고 그런 게 없겠냐마는... 그래도 우리나라는 일본보단 낫지. 시민혁명의 역사도, 수평적 정권교체의 역사도 갖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매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들 중 1천 명 중에 한 명은, 17세에서 24세가 되는 해에 '공식적으로' 죽는다. 이것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래서 결국 삶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드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공식적인 살인 행위. 그리고 그렇게 죽을 날짜가 미리 정해진 청년들에게 사망 24시간 전에 전달되는 것이 바로 이키가미. 이른바, 사망예고통지서. 요 이키가미를 예비 사망자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이 주인공인 만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죽음이 예정된 이들은 범죄도 저지르고,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여러 가지 다양한 행위를 저지르고 다니는데... 그렇다고 해서 미리 예정된 죽음이 피해가거나 하진 않는다.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죽음과 세금'이라는 프랑스 속담처럼 죽음은 그저, 덤덤히 다가간다.

문제는 이와 같은 '국가로부터의 공식적인 살인 행위'(작품 내에선 국가번영법, 줄여서 국번법이란 근거를 두고 있다)에 대해 의문이나 불만을 갖는 이들에겐 반체제분자나 퇴폐분자로 낙인이 찍히고, 그 역시 국가의 번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사회적 처벌이 가해진다는 것.

물론 SF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뚜렷하고 아주 흥미로운 작품.


P.S: 조금 검색을 해보니 영화로도 나온 모양인데, 원작을 재미있게 본 상태에서... 영화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왠지 꺼림직해진다;; 일본에서, 아주 재미있었던 만화나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망친 케이스가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