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tc

세상을 바꾼 사진과 사진가들: 뱅뱅클럽을 보고서




모든 이야기는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랜 굶주림으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아이. 그리고 마치 아이의 목숨을 노리는 듯한 독수리의 매서운 눈매. 이 사진은 살아 생전 보도사진가 그룹인 '뱅뱅클럽'의 일원이었던 케빈 카터의 작품이고, 199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속했던 그룹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뱅뱅클럽'을 어제 봤다.





뱅뱅클럽이라는, 발랄한(?) 이름의 그룹은 당연히 실재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가벼운 제목과는 달리 뭔가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달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사실인데 영화는 마치 다큐처럼 그냥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하기만 해서 '영화적'으로만 놓고 봤을 땐 약간 심심. 그래도 평소에는 접할래야 접할 수가 없는 보도 전문 사진가(혹은 종군기자?)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왔다. 그리고 왕년에는 나름 꽃돌이 소리도 좀 들었던 라이언 필립이 꽤 늙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영화 포스터에서 3번째의 배우가 바로 케빈 카터 역을 연기한 배우인데, 실제로 케빈 카터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위의 수단 어린이 사진이 1994년 워싱턴포스트 1면에 실리고 퓰리처상을 받자, 케빈 카터에게는 절묘한 순간을 포착했다는 찬사와 함께, 카메라를 집어던지고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난도 쏟아진다. 바로 그런 비난 때문에 케빈 카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알려지면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게 밝혀진다. 실제로 사진 속 아이의 바로 옆에는 엄마가 있었으며(아이를 안고 가다가 잠시 땅에 내려놓은 상태였다고), 독수리는 그저 잠시 땅에 내려와서 앉았다가 몇 초 후에 훌쩍 날아가버렸다고 한다(이는 일본인 저널리스트이자 역시 보도사진가인 후지와라 아키오의 취재에 의해 알려진 사실이다. 후지와라 아키오는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를 발간했고, 국내에도 나와있다).

물론 남아공 출신인 케빈 카터가 수단으로 가서 위의 독수리와 소녀 사진을 찍기 전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참상을 매일매일 접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대마초나 마리화나 같은 것에 의존해야만 했고, 말년에는 심지어 마약에도 손을 댔으며 뱅뱅클럽의 일원이었던 동료가 현장에서 촬영 도중 유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이긴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에게 쏟아졌던 일부의 비난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보도사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생각이 나는 사진들이 몇 장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의 작품이다. 사진 속 소녀의 저 신비롭고도 불안한 눈빛은, 구구절절한 장문의 글이나 유명 정치인의 일장연설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스티브 맥커리는 위의 사진을 촬영하고 약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찾아 사진 속 소녀(물론 다시 만난 그녀는 이미 여러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를 다시 만난다.

3년 전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스티브 맥커리 사진전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 갤러리 한켠에선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찾은 스티브 맥커리를 촬영한 짤막한 다큐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 다큐를 보니 여러 아줌마들이 사진 속 소녀가 서로 자기라고 우기는 코믹한 상황이 나오기도. 




그리고 이 사진도 생각이 난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라고 하는, 체 게바라의 사진을 찍은 이는 쿠바의 사진작가인 알베르토 코르다. 그는 약간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젊은 시절에는 굉장히 세련되고 극단적으로 연출된 광고 사진을 촬영해서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에 감동(?)을 받고는 아예 피델, 그리고 체와 거의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필름에 담았다(체 게바라 평전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진은 모두 그의 작품이고, 심지어 코르다는 그의 아들 이름을 '피델'로 짓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생생한 현장을 담은 보도사진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카파이즘의 아버지이자 보도사진가 그룹인 매그넘의 아버지이기도 한 로버트 카파의 이 유명한 사진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전(?)한 로버트 카파는, 위의 공화국 병사가 총탄에 숨을 거두는 순간의 이 사진을 촬영한 바로 직후에 지뢰를 밟아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역시나 보도사진, 그리고 매그넘을 이야기하면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을 빼놓을 수는 없다. 로버트 카파와 함께 매그넘을 만든 그는 '찰나의 사진가'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졌는데, 위의 '생 라자르역 뒤에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위의 작품처럼 잔잔하면서도 약간은 코믹한 순간을 잘 잡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그의 작품 면면을 보면 뭔가 '살롱스러운' 느낌을 많이 받긴 하지만 원래 그도 보도사진 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미술 사조로 치면, 요렇게 표현주의적으로 다소 연출된 모습을 많이 촬영한 으젠느 앗제도 사진작가로서 좋아하는 편. 사실 그의 작품은 알게 모르게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ㅎㅎㅎ


아~ 쓰다 보니 사진전 가고 싶다. 요즘 괜찮은 사진전 어디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