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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아, 어느덧 세월은 지나가네



 


(가급적이면 본 파일을 재생시킨 상태에서 포스팅을 읽으시길)




Eheu, fugaces labuntur anni.


하필이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인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에 나온 위의 문구가 눈길을 잡아 끌었다. 고대 로마 시인인 호라티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말로, 우리말 뜻은 "아, 어느덧 세월은 지나가네"라고 한다.

마이클 잭슨, 성규안, 그리고 패트릭 스웨이지. 젊은 시절의 내 감수성을 뒤흔들었던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약간씩의 차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마이클 잭슨. 정확한 영어 발음이나 가사 따위 전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서, 왁스질로 맨들맨들한 복도에서 그의 문워킹과 모자를 멋지게 던지는 흉내를 내고 놀았던 꼬맹이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시 또래보다 조금은(아주 조금은) 영어를 좀 알았고 노래를 좀 했던 나는 또래들 사이에서 '마이클 잭슨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놈'으로 통했다.





성규안. 이 땅의 중고딩들을 홍콩 느와르 광빠로 만들었던 바로 그 영화,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서 악역을 도맡았던 그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유자는 정확한 이름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고릴라'로 통했다. 그리고 당시 전국에 있는 (남자)중고등학교에는 거의 반에서 한 명씩은, 바로 이 '고릴라'와 매우 흡사하게 생긴 친구를 두기도 했다.





패트릭 스웨이지. <더티 댄싱>의 춤꾼에 반하지 않은 여고딩을 찾기가 힘들었던 시절도 기억나게 한다. <고스트>에선 한없이 로맨틱한 '유령'으로, <폭풍 속으로>에서 간지 풀풀 날리던 쿨한 은행강도에 입을 딱 벌리지 않았던 사람, 단언컨대 매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음이 틀림없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나의 곁을 떠나가는 게... 꼭 과거의 한 조각이 베어져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올해 초부터 차례로 영면한 '바보'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인동초'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너무나도 거대한 사람들이어서 그야말로 한 시대가 끝났음을 느끼게 해줬다면, 마이클 잭슨과 성규안, 그리고 패트릭 스웨이지의 경우는 애잔한 느낌이 훨씬 더하다.

어차피 사람은 한 번 살다 가는 것이라곤 하지만, 꼭 매우 가까운 친구였던 것만 같은 저들을 그렇게 떠나보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냥 먹먹하기만 하다. 부디, 평화롭게 잠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