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바이스>를 봤을 때 엄청난 기대를 했던 만큼 실망이 컸던 게 사실이다(그런 데다 상영 도중 영사사고까지 일어났으니!). 밤 늦은 시간에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와서는 블로그에 악평을 퍼부었던 기억이 난다. '스타일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라고.
그런데 나중에 이 영화를 다시 구해 보고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스타일'과 무지 불안하게 보이는 연출이 모두 꼼꼼하게 의도된 것이었다는 것도, '이야기'보다는 내러티브의 흐름에 우선권을 부여했다는 것도 모두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인정한다. 처음 볼 당시에는 미처 알아먹지 못했던 것을. <마이애미 바이스>는 뛰어난 영화였다. 그리고 <퍼블릭 에너미>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영화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경제 대공황 시기 미국의 전설적인 갱이었던 존 딜린저에 대해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이 영화는 '야구와 영화와 빠른 차와 위스키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갱스터를 영웅시하거나, 아니면 왜곡된 사회상을 그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단지 매우 매력적인 두 남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등등도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쩌면 위에 이야기한 것들을 모두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 내내 '범죄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지'에 천착한 마이클 만 감독의 스타일이 극대화되었다는 것이고 그 시도가 꽤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인기 절정인 두 남자배우가 나오긴 하지만, <퍼블릭 에너미>의 주인공은 존 딜린저 역의 조니 뎁 하나이고 카메라가 핸드헬드로 정신 없게 굴러다니는(?) 이유는 오로지 이 불안정한 인물의 시야에 관객을 동화시키기 위함이다. 강도 한 명과 경찰 한 명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킨 <히트>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유가 그것이다.
<퍼블릭 에너미>는 걸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영화다.
P.S 1: 전체 상영 시간이 2시간 반 가량 되는데도 군데군데 편집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감독판 DVD(만약 나온다면)를 기대해본다.
P.S 2: 지금 OST를 듣고 있는데, 처음에 템포가 빠른 곡으로 시작되었다가, 이완되면서, 아주 생경한 리듬의 곡이 나오는 OST의 전체적인 구성까지 <마이애미 바이스>의 OST와 무지하게 비슷하다!
P.S 3: 2시간 반 동안 '난 안 될꺼야, 아마'를 몇 번이나 속으로 뇌까렸는지 모르겠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 빠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