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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웃기고 재미있는, 멋진 징조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신(神)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맞다. 사실 신은 주사위 놀음보단 카드 게임을 즐기는데, 방 안은 완전히 어둡고, 카드에는 아무런 그림도 없으며 심지어 이 게임에는 룰도 없다. 판돈은 어마어마하고, 딜러는 룰을 가르쳐 주는 대신 내내 썩소만 날리고 있다"

테리 프래챗, 닐 게이먼 공저인 멋진 징조들의 원제는 'Good Omens'이다. '오멘'이라는 단어에서 그 옛날 동명의 영화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쨌든 이 소설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수천 년에 걸쳐 인간 세상에서 굴러먹다 보니 너무나도 '인간'에 가까워진 악마, 고서점을 운영하는 책 오타쿠 천사, 그리고 이 세상에 마지막을 선사하고자 선택된 적 그리스도. 그리고 그들 외에도 나름 심각하지만 무지 우스꽝스러운 마녀 사냥꾼과 마녀(!), 영매, 심지어 지옥의 4사도까지 등장한다.

그런데, 강조하자면, 이 소설은 코미디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저자 프로필과 역자 프로필까지, 뭔가 범상치 않음을 과시하더니 수상쩍은 사탄 숭배자들이 점령한 의료원에서 태어난 적 그리스도는 뒤바뀌고 지상의 악마는 그룹 퀸의 노래를 통해 지옥과 소통한다(왜 오지 오스본이 아닌지?).

어쨌든 여기에서도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는 방법은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인데, 그것이 결국 세상에 찾아오는 방식은 열한 살 먹은 어린이의 상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식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묘사 또한 매우 탁월하다(특히 어느 날 갑자기 심해에서 튀어나온 크라켄을 두고 '100억 인분 어치 오징어 스시'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뭔가 심각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낄낄거릴 만한 농담으로 가득한데, 부분적으론 미국식의 직접적인 조롱보단 에둘러 표현하는 식이 많은 영국식 유머가 조금 생소하긴 한데(그렇다곤 해도 '정통'으로 넘어가면 미국식이나 영국식이나 국내 독자 전부들에게 생소한 건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론 부담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어 넘길 수 있는, 무엇보다 꽤 재미있는 소설이다.

가뜩이나 이런저런 우울한 일이 많은 요즘, 짬짬이 볼 수 있는 웃기고 재미있는 소설을 원한다면, 강력 추천 한 방 날린다.

P.S: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재미있게 봤다면(소설/영화 둘 중 하나, 혹은 모두) 재미는 더욱 배가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