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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의 남북축구: 축구는 축구다



장면 하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4강전,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맞붙은 경기. 그 유명한 '마라도나 신의 손' 사건이 벌어진 경기가 바로 이날의 경기였다. 사진에서도 명백히 보이고 대부분의 관중과 선수들은 핸드볼 반칙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정작 주심은 골을 선언했다. 그리고 마라도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오랜만에 열린 월드컵에서 조국 아르헨티나에게 우승컵을 안기며 대회 MVP에 뽑혔다.

더 희한한 일은 작년에 있었다. 마라도나가 바로 문제의 그 골은 의도된 반칙이었음을 밝히고, 당시의 상대국인 영국 국민들에게 사과를 한 일인데, 이를 두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물론 당시 함께 뛰었던 동료들마저 마라도나의 이 행동에 대해 분노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장면 둘.

1999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1차전은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부산 대우 로열즈를 2:1로 제쳤다)이 열린 수원 종합운동장.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도 스탠드를 꽉 메운 3만여 팬들이 내뿜는 열기가 그대로 피치로 전해져, 역대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중에서도 가장 거친 경기가 벌어졌다.

선제골을 넣은 쪽은 원정팀 부산. 그러나 부산은 후반 들어 자책골을 내주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부산으로선 어떻게든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 3차전이 열릴 예정이었던 잠실종합경기장에서 리그의 대단원을 쓰고자 했다(상황에 대한 간략 설명: 당시는 유럽 리그나 현재의 K-리그에서 채택 중인 '원정 팀 골 2배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고, 무승부는 없이 무조건 연장으로 갔다).

연장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좌측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당시 수원의 골잡이이자 특급 외국인 선수였던 샤샤 드리쿨리치가 손으로 슬쩍 건드려 골망을 흔들었다(당시 TV로 이 경기를 지켜봤는데, 골을 확인한 샤샤가 주심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뻘쭘한 표정으로 동료들과 함께 골 세레모니를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이른바 'K-리그판 신의 손 사건'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일종의 질책성 액션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 99년의 K-리그 MVP는 우승팀이 아니라 최초로 준우승팀인 부산에서 나왔다(안정환 선수가 받았다).


축구에서 오심의 역사는 축구 자체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그러나 축구를 오랫동안 즐겨온 팬이라면, 그런 심판의 오심 대부분이 나중에 번복된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알 것이다.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명백한 승부조작에 대한 징계로 세리에A의 유벤투스가 지난 05-06 시즌에 세리에B로 강등되었던 일 정도가 있을 것이다.

여러 스포츠 팬들이 누누히 하는 이야기지만, 심판이 신이나 기계가 아닌 이상 실수는 할 수 있으며, 바로 그런 오심조차 경기의 일부인 것이다. 만우절에 서울에서 열린 남한과 북한의 축구 경기 중 북한의 스트라이커 정대세의 헤딩슛이 골문을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런 저런 각도에서의 장면으로 보자면 골인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심판이 골로 인정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해당 장면에서 심판은 골을 선언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한은 후반 막판에 쥐어 짜내듯 얻은 결승골로 승리했으며, 결국 승점 3점을 획득했다. 뭐가 더 필요한가?

축구란, 그리고 스포츠란, 원래 그런 것이다.

덧붙이자면,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북한인데 상대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나 부상으로 넘어져 있을 때 그리 큰 소리로 야유를 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하루 이틀 나온 건 아닌데, 전적으로 뻘소리라고 생각한다.


유로 2000이 끝나자 마자 FC 바르셀로나의 주장 완장을 차고 있던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는, 카탈루냐인들의 공적(公敵) 1호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 이적 후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에서 열린 첫 엘 클라시코 더비. 피구가 코너킥을 차러 가자 관중석에선 수백 개의 동전과 나사못, 벽돌(!),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돼지머리까지 날아들어 결국 코너킥을 차지 못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비슷한 상황으로, "라이벌 팀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공언한 잉글랜드 대표팀 수비수 출신의 숄 캠벨. 왕년 이영표 선수가 속했던 토트넘 소속이었던 그가 팬들과의 약속을 깨고 아스날로 이적하고서 열린 북런던 더비에선 숄 캠벨이 공만 잡으면 관중석에서 터지는 야유 소리가 거의 항공기 이륙할 때 나는 수준의 데시벨을 기록했다는 일화도 있다(이영표 선수의 이적 초창기에 이 경기를 본 축구팬들이 많을 것이다).

솔직히 어제 경기 정도의 야유는, 귀여운 애교 수준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다시 이야기하지만, 축구는 축구다. 거칠고 격렬하기로 유명하고, 바로 그런 이유로 순수한 스포츠 정신이 아닌 다른 어떤 이념(쇼비니즘이 되었건, 내셔널리즘이 되었건)이 끼어들 여지가 많은 종목이 바로 축구. 어떻게 보자면 또 그런 일들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