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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 400년 전의 복수가 여전히 유효한 현재



전체주의의 무서운 점은, 개별적 인격체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 나는 다르고,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다르며, 내국인과 외국인은 다르다. 당연하다. 이렇게 명백하게 당연한 사실은 주로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당사자가 설정한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걸,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의 시각에 의하면 일탈행위를 일삼는 불순분자(?)들은 차별과 공격의 대상이 된다.

앨런 무어, 데이비드 로이드 공저인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는 사실 국내에선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액션 영화로 유명하지만 위에 이야기한 전체주의의 위험을 고발하는, 아주 유려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다(글쓴이는 영화를 보진 못했는데, 원작의 주제의식 말고는 별로 볼 게 없는 영화라는 평이 지배적이지만 그 세계관에 매혹된 일단의 지지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자세히).

이 영국산 그래픽 노블은 우선 그림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다. 이 쪽 방면에선 선배격인 미국산 코믹스풍의 분위기(쉽게 말해서, '양키 센스가 그득한')와는 달리 일견 투박한 듯하지만 굉장히 섬세하고 명암이 특별히 강조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주인공 브이가 내뱉는 그 현학적인 대사들. 물론, 전체주의 권력이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한 CCTV는 '눈'이란 표현으로, 반정부사범을 수사하는 비밀 경찰들을 '손가락'으로 묘사하는 등 위트도 넘친다.

작가가 이런 식으로 선택한 작품의 외양은, 브이 포 벤데타가 처음부터 끝까지 견지하는 세계관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의 진중한 울림은 내용을 더 파고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작품 내에서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미국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외국(브이 포 벤데타의 태생은 영국이다)과의 핵전쟁 위기가 다가오면서 영국에는 전체주의 권력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권력의 횡포.

영국의 최고 권력자는 모든 대화의 말미에 항상 "영국은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누구와의 전쟁에서? 전체주의는 항상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다진다.

주인공 브이는 400년 전 영국 국교회의 박해에 저항하며 영국 국회의사당 폭파를 기도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심지어 작품 내에선 빅벤도 폭파시키지만, 따지고 보면 이름처럼('벤데타'라는 단어는 복수를 뜻한다) 다분히 개인적인 복수를 한 건데, 그의 '테러리즘'은 시대상과 결부되어 절대권력에 맞서는 행위로 승화된다.

작품의 말미, 이 어두운 쾌걸 조로는 일종의 세대교체(?)를 이룬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권력에 대한 항거는 면면히 이어진다.

그리고 400년 전 가이 포크스의,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의 복수(혹은 레지스탕스)는 2009년의 서울에서도 이어진다.

작년 봄과 여름, 우리는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직접 목격했다. 다정하게 팔짱을 낀 연인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나온 꼬맹이가, 돋보기 안경조차 무거워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자유를 만끽했다.

그 뒤를 이은 저들의 후안무치함. 물대포는 저들의 대답이었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에겐 범죄자의 낙인이 찍혔다. 조금 더 지나 인터넷에서 현 정부의 무지함을 지적한 이는 구속 수감되었고, 생의 마지막까지 내몰린 이들은 불에 타죽었다.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이들에게, 400년 전 가이 포크스의,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의 복수는 여전히 유효하다.

<추신>
이렇게 급진적인 내용의 책을 우리나라에서 펴낸 출판사의 사장은 바로 전두환의 아들이다. 이토록 우스운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