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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더 로드/팔레스타인


우리는 절망에 대해서, 참 쉽게 이야기한다. 매일매일의 삶에서 도무지 발전의 가능성이란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고, 빛이 되어줄 아무런 대상도 찾을 수가 없다고.

그런 반면 또 우리는 희망에 대해서도, 참 쉽게 이야기한다. 당신의 오늘은 어제가 마지막이었던 그 누군가가 그렇게 바랬던 내일이었다고.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숨어있던 건 한 가닥 희망이었다고.

여기 책 두 권이 있다. 하나는 순수 문학 작품이고, 하나는 저널리스트가 쓰고 그린 르포. 이 두 권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희망'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상황을 그렸다는 것이다.

절망의 밑바닥. 바로 거기에 '더 로드(코맥 매카시)'와 '팔레스타인(조 사코)'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저자이기도 한 코맥 매카시는 미국에선 헤밍웨이와 J.D. 샐린저 이후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 국내에 나온 이 작품에 많은 이들이 열광을 보냈다.

세상이 멸망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작품 내에서 결코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폐허가 된 이 세상에서 신천지를 찾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걷고, 걷고, 또 걷는 부자(父子)의 스산한 이야기가 전부다.

어둠이 존재하는 건 그 다음에 빛이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안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다 필요 없는 소리다.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놓인 지금 우리의 삶과 더 로드에 등장하는 아버지/아들의 삶은 그리 다르지 않다.

더 로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 역을 했던 비고 모텐슨이 주연을 맡아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참으로 평화롭고 안락한 곳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고들 하는데, 바로 그런 말조차 사치가 되는 곳이 지금 이 세상에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만화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 사코는 90년대 초반 짧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 점령지인 가자 지구에서 실제로 거주하면서 그 곳 사람들의 삶을 취재하여 이 무겁고도 진중한 울림이 있는 르포를 '그려냈다'.

가족들의 죽음을 시시때때로 눈앞에서 목격해야 하는 이들 앞에서 과연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 작품 내에서, 미국인인 저자의 인터뷰 상대가 되어준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이전에도 많은 외신 기자들 앞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과연 달라진 게 뭐냐? 당신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끝 간 데 없는 절망을 이야기하는 책 두 권 중, 더 로드는 얼마 전에 다 읽었고 팔레스타인은 예전에 봤던 걸 다시 꺼내어 짬짬이 보고 있으며, 공교롭게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절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 지글러의 '탐욕의 시대'를 지금 보고 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생존권이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곁에도 있고 깊은 불황에 길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황폐해진다. 무진장.

황폐해지지만, 그래도 세상은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지금 이런 포스팅과 같은 작업도 미약하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