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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죄



다음넷 아고라 게시판에서 미네르바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30대 박모씨가 결국 긴급체포되었다. 그의 (허울뿐인)혐의는 허위 사실 유포.

긴급체포란 현저한 혐의가 인정된 피의자가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행하는 공권력이다. 자 여기에서 우리 까놓고 말해보자. 그가 정말 그렇게 심각한 수준의 범죄자인지를.


미네르바의 죄목 1: 전문대 졸/30대 무직자(백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이제 막 사회에 들어서는 나이에 속한 이가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나태의 범죄다. 그렇게 많은 우리 주변의 젊은이들이 단지 백수라는 이유만으로 잠재적(혹은 실제적)으로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제를 살리려면 삽질(진짜 땅 파는 삽질)을 해야 한다고 믿고,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지하의 철옹성 벙커로 숨어드는 인간이 정권을 잡고 있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30대의 백수이며, 게다가 개나 소나 다 가는 4년제도 아닌 2년제를 나온 것만으로, 미네르바는 큰 죄를 저지른 것이다.

미네르바의 죄목 2: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탁월한 식견

어쨌든 현재까지 스스로가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30대 박모씨가 다음넷 아고라에 기왕의 글들을 썼던 이유는, 혼란한 경제 상황으로 가정이 붕괴되는 것(10년 전 IMF 때 우린 이런 광경을 얼마나 많이 목도했나)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렇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그는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게 바로 미국의 4대 은행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등.

적어도 둘 중에 하나는 명백하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커맨드 센터에 앉아있는 작자들은, 지금의 세계적 경제 공황에 대해 전혀 몰랐거나, 알고 있었어도 입을 닫았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수장 자리들이 몰랐던 걸 알고 있었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괘씸죄(전문대 나온 백수가 '무엄하게도')가 적용되는 거고, 알고 있었는데 입을 닫았다면 설레발 치면서 '국민을 호도한 죄'가 적용되는 거다.

이게 죄가 아니라면, 미네르바의 손목에 은팔찌를 채운 이들의 생각에 또 뭐가 죄가 되겠는가?

미네르바의 죄목 3: 닥치고 본보기

요즘이야 그렇지 않다지만,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급 분위기가 뭔가 어수선하다 싶으면 담임이 그걸 한 방에 휘어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만만한 넘 하나 끌어내서 피멍이 들도록 패고, 바리깡으로 머리에 고속도로 낸다. 그러면 일단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이른바 본보기. 혹은 희생양.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크나큰 죄를 저지른 미네르바를 일단 잡아 가두면, 앞으로는 찍 소리도 못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는 쉽다. 꼰대 기질과 적절한 수준의 곤조를 갖춘 이라면 더욱 더.

이런 상황에서 미네르바의 죄목은 이렇게 완벽하게 완성되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그래도 세상은 조금 더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