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소년탐정 김전일이란 제목은, 딱히 그 작품(코믹스나 애니메이션, 혹은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고 그 중에는 글쓴이도 포함된다. 다분히 희화화되기도 하면서 각종 패러디의 주인공도 되는 이 김전일의, '실제' 할아버지인 명탐정이 나오는 소설.

이누가미 일족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을 때 책 날개에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가 나온다'는 광고 문구를, 그냥 농담처럼 들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작품 내의 세계관(?)에서 이 2대를 거친 잔혹사는 분명히 실재한다.

일본 추리문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긴다이치 코스케(金田一耕助)는 일본에서 이른바 국민탐정으로 불리는 인기 캐릭터이며, 국내에서 코믹스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김전일의 본명은 긴다이치 하지메. 김전일이라는 이름은 원래 성(姓)인 긴다이치를 국내 사정에 맞게 전체 이름으로 살짝 치환한 경우다.


2차 세계대전에서 결국 패망한 다음, 당연한 말이지만 전후의 일본 사회는 꽤 혼란한 모양이었다. 스무 명 가까운 은행 직원들을 통째로 독살시키고 현금을 대거 털어 달아난 실제 사건(당시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이 사건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추리 작가들도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아직도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소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에선 위에 이야기한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탐정이 활약한다.

쇼와 시대, 그러니까 1947년이 배경인 만큼 당시의 일본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묘사가 꽤 많고, 그런 만큼 같은 정통 추리소설 장르인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에 비해 오히려 더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일본 국민 탐정의 활약상은 그 자체가 매우 생경하다. 좀 희한하긴 하지만, 단순히 지리적인 원근을 따지기보단 문화 컨텐츠의 도입에 있어 이전에 다소 편향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있었던 건데, 이건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현실에서 영어 이름은 익숙하지만 일본 이름은 낯선 것뿐.

하여튼 일본의 독자들이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캐릭터에 왜 열광하는지 그 이유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밀실살인, 이중 삼중의 트릭, 치정에 얽힌 원한 등등 다소 복잡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모습도 작품 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더벅머리에 비듬을 흘리고 다니는가 하면 평소에는 몹시 게으르고 아주 결정적인 단서도 본인이 스스로 찾아냈다기보단 다른 사람의 힘을 빈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미스 마플이나 포와로 경감 같은 경우도 사건 추리에는 완벽하지만 개인적인 단점 하나씩은 갖고 있었다는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미스 마플은 거동이 불편한 노파였으며 포와로 경감은 키도 작고 대머리에 누가 봐도 탐정처럼 생기진 않았었다.

전체적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보다는 몇 곱이나 더 냉랭하고 무엇보다 암울하다. 과거엔 화려한 영화를 누렸으나 현재 완전히 몰락한 가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패전 후 일본 사회의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답답하게 숨을 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P.S: 이 작품은,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다른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몇 번이나 TV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최근작은 재작년인 2007년에 TV드라마로 방영되었다고 하며, 작품 속에서 아주 중요한 오브젝트인 플루트 곡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의 mp3 파일은 출판사인 시공사의 공식 블로그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요코미조 세이시 (시공사, 2009년)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