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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두 권




3일만에 열게 된 블로그 글쓰기 바탕의 흰 화면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하여튼 글을 쓴다는 작업은, 어떤 자리에서건 어떤 환경에서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무언가 사람을 짓누르는 그런 구석이 있다. 그럼에도 그걸 끊지 못하는 건 차라리 마약이다.

요새 밤에 잠들기 전에 짬짬이 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두 권이 있다. 이렇게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건, 앞이 콱 막힐 때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그 어지럼증을 해소했을까 하는 점.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Roger Ackroyd Murder)

정통 추리문학 작품 중에서, 존재감으로 따지자면 당연히 만신전에 올라 마땅할 바로 그 작품을 뒤늦게서야 봤다. 그런데 문제는, 반전이 기가 막힌 이 작품의 마지막을 미리 알고서 봤다는 거다. -_-;; 사실은 이전에 친구한테 이야기를 듣고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고 사실 별로 볼 생각은 없었는데 그냥 한순간에 '빡' 꽂혀서 보게 된 케이스.

다양한 인간군상이 보여주는 상황이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작은 잿빛 뇌세포'를 쉴새없이 움직이는 괴짜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그는 이 작품에선 은퇴를 한 상황이지만 주위 상황이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정작 그는 은퇴 후 평화롭게 정원에서 호박이나 키우면서 살고자 했는데!)의 철두철미함이 돋보인다.

다만, 이번에 애크로이드 살인을 보면서 느낀 건데,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정통 추리문학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는 걸 다시 느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너무나도 명쾌하게 해결해버리고 마는 완벽한 주인공은 요즘 대중문화 바닥에서 그리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다. 불굴의 초능력이나 굴지의 경제력을 갖춘 슈퍼 히어로들조차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대는 요즘 아닌가.

에르큘 포와로나 미스 마플 같은 캐릭터는 분명 흥미롭지만, 글쎄올시다.


누명(Ordeal by Innocence)

이 작품은 비교적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군 중에서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모양인데, 포와로도 마플도 나오지 않는다. 다소 현대적이긴 한데 아직까진 정통 추리물 쪽의 분위기가 더 짙다.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도 좀 이례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국내에 그리 많이 알려지진 않은 것 같으니 잠깐 스토리를 주워섬기자면, 양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을 하게 된 인간 쓰레기 아들이 교도소에 갇힌 뒤 금방 폐렴에 걸려 사망한다. 그는 재판 당시 내내 알리바이를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사건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다음, 그러니까 당시 진범으로 복역 중이던 아들까지 사망하고 난 다음에서야 당시 그의 알리바이를 주장하고 나서는 사람이 나타났다. 자, 그러면 도대체 진범은 누구인가. 겉에서 보기에는 완벽하게 행복한 가족이지만 그 구성원들 중 누구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 상황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꽤 재미있고, 무엇보다 템포가 꽤 빠른 편이다. 마치 미국 현대물 작가의 하드보일드를 읽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마무리에서 너무 서둘렀고 봉합이 좀 엉성해 보이는 듯한 부분은 약점.


이제 날이 밝으면 또 바쁘게 지내는 생활로 돌아갈 텐데, 그래도 이렇게 책이라도 읽을 짬은 내고 있으니 행복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