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고스트 라이터: 이렇게 거대한 음모




판을 너무 크게 벌렸다. 이 정도까지 갈 줄은 몰랐다.

로버트 해리스의 고스트 라이터(원제 The Ghost)는 분명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소설인데, 마지막 장까지 다 넘긴 다음엔 맹랑한 만화를 한 편 본 기분이다. 이렇게 장대한(?)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해야 할지, 아니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할지.

하긴 정치인이란 작자들은 가끔 만화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이긴 한다. 바로 그래서 고스트 라이터 같은 작품도 나오는 것일 게다.

소설 속의 전직 영국 수상 애덤 랭은 명백히 토니 블레어를 연상시킨다. 집권 기간 내내, 특히 이라크전 국면에 와서 '(아들)부시의 푸들' 소리를 들을 정도로 미국의 의견을 추종했던(그러면서 자국의 국익을 위해 가져간 건 하나도 없는) 건 도대체 그의 성분(?)이 뭔지 의심을 갖게 한 행위였다.

그리고 전직 영국 수상에 얽힌 거대한 음모를 결국 밝혀낸 사람은, 바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가 없으며 심지어 비밀 서약까지 한 '대필 작가' 고스트 라이터인 것이 흥미롭다. 말하자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란 사실을 안 벙어리 이발사랄까.

작품의 마지막은 액자 형식을 취하면서 결국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진실이 과연 만천하에 드러날지는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건, 실제에서건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P.S:
고스트 라이터는 현재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연출은 로만 폴란스키, 주인공 대필작가 역은 이완 맥그리거, 전직 영국 수상인 애덤 랭 역은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는다고. 꽤 잘 어울리는 캐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