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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껄껄(呵呵)' 대며 웃다



이인화 원작, 박종원 감독의 '영원한 제국'에는 한국영화 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고 보)는 명장면이 등장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시선을 서로 교환하기 힘든 발을 사이에 두고 정조(안성기 분)와 심환지(최종원 분)가 '매우 뜨겁게' 맞서는 바로 그 장면.


이 장면에서 정조는 심환지로 대표되는 노론에게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추궁하고, 심환지는, 쉽게 말해서 '더 이상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까진 TV 드라마는 물론 영화에도 별로 나온 적이 없던 최종원이란 배우의 연기에 숨이 막혔다.

이 장면은 당시만 해도 정통 사학계나 재야 사학계에서 모두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던 정조와 노론의 대립이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또한 영화 자체도 서로 대립되는 두 진영을 그리는 데 있어 복식 고증을 철저히 무시하고 완전히 다른 보색 대비(빨간색과 파란색)로 대립시키면서 매우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던 것도 기억한다.

실제로 정조가 시시때때로 심환지에게 친필 서찰을 보내고 받으며 꽤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는 것은, 지난 2월에 공개된 정조어찰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 중 또 다른 하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정조가 죽은 것은 당시의 반대 진영, 그러니까 노론에 의해 독살된 것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했는데, 적어도 이 문건에 의하자면 그렇지는 않고 대신 정조는 지병이 있었던 걸로 확인되고 있다.


이른바 '정조 독살설'의 정점에 서 있던 케이블TV 드라마,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 이 드라마도 박종원 감독이 연출했다.

지난 2월에 처음 세상에 공개된 정조어찰첩이 성균관대 출판부를 통해 발간되었다. 이미 첫 공개 때 많은 내용이 알려진 바 있는데, 대표적으로 '문체반정(文體反正)', 즉 순정한 고문의 문체를 적극 장려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 있어서는 일종의 사상적 검열을 실시하기도 했으나(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문체반정을 어긴 대표적 사례다) 정작 정조 자신은 '호로자식'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욕설을 편지에 담거나 '껄껄(呵呵)'대며 웃는 등(요즘으로 치면 'ㅋㅋㅋ' 정도의 표현?), 적어도 문서로만 보면 그리 점잖은 편은 되지 못했던 걸로 보인다.

게다가 굉장히 성질이 급하면서도 자신을 상소한 젊은 신하에게 뜬금 없는(?) 아량을 보이기도 하는 등 정말 종잡기가 힘든 인물로도 보이기도 한다.

사실 작년과 재작년에는 TV 드라마에서 정조가 꽤 많이 등장했다. MBC의 '이산'은 말할 것도 없고 SBS의 '바람의 화원'에서도 조연급(?)으로도 나왔다. 이 정조어찰첩이 시중에 나오게 되면 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