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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비겁한 변명





대학교 신입생 시절, 들고 있던 손을 부들부들 떨게 만든 책들이 있었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그리고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그리고 또 하나가 바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였다. 1980년의 바로 그 때,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소 건조하게 기록한 이 책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송이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황석영이라는 이름은, 그 때 나에게 그렇게 처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름에 대해서 난다분히 반체제적인 문인이자 지식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적어도 24시간 전까진.


황석영씨는 지금 중앙아시아에서 환대를 받고 있는 2MB를 수행하며, 앞으로도 그를 도울 것을 밝혔다.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수 차례 방북을 한 바 있으며 실제로도 북한에서 엘리트급에 속하는 몇몇 이들과 친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지금의 정부에서 '도울 일'이란 게 있다면 당연히 대북관계에 있어서의 역할일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 이야기가 있다. 황석영은 지금의 정부가 "보수우익보다는 중도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뭐, 똑똑한 양반이니 가르치려 들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PSI 참여 연기를 늦춘 것도 일종의(?) 실용주의로 보게 되는 시각에는 100% 동의하기가 힘들다. 그건 그렇고,

황석영이 구상한 '유라시아 문화인 평화열차 프로젝트'를 보자. 동북중앙아시아 연대 -> 공동체 -> 연합 -> 연방의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다른 것 없다. 바로 딱 그거다.


그렇다. 바로 한반도 대운하. 그런데 이렇게 인공적인 조감도를 보고 있자니 저기 한복판에서 고질라가 노닐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_-

하여튼 2MB로서는,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정보통신의 시대에 삽질이 왠말이냐고 시끄러운데 이런 거대한 문화 사업이 잘만 진행된다면 이만큼 구색이 잘 갖춰진 꺼리가 또 어디 있겠냐는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청사진이 제시되었을 것이다.

그냥 개인의 소신에 따라 누구(혹은 특정 사안)를 지지하고 말고의 여부를 굳이 왈가왈부하고 싶지도 않다(귀찮다, 이제는). 그럼에도 딴죽을 걸고 싶은 것 하나는, 구차한 변명은 진짜 듣기 싫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완전히 실용성만을 따지자면 북한에 대한 지원은 땡전 한 푼 없어야 마땅하다. 그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에게만 찰싹 달라붙어서 하라는 대로 꼬리만 흔들면 찌끄러기나마 얻어먹을 수는 있다. 이게 진정한 실용주의 아닌가? 근데 지금의 정부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이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황석영의 말 대로라면, DJ도, 노무현도 실용주의 정부였어야 했다.

신해철이 입시학원 광고를 찍고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고 한 거나, 황석영이 '진보 세력들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했다'고 한 거나, 다 듣기 싫은 비겁한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