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와 보수주의, 그리고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지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와 같은 구분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단지 특정 정치세력(더 명확히 말하자면,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로 그 사람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판가름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 사람이 지금껏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으며 어떤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궁극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그 어떤 상황'을 이룩하기를 원하는지, 혹은 '지금 그대로의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기를 원하는지를 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은 넓어진 프레임 안에서라야 어느 한 쪽 진영(?)이 절대선이고, 절대악이 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이 적지 않게 왜곡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보'라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현실에 부정과 불합리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과는 뭔가 다르고 새로운 그 어떤 것에 천착한다. 물론 그렇게 바꾸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생길 거고, 때로는 그 변화의 방향이 본의 아니게 엉뚱한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저간의 사정을 모두 계산에 넣고 있는 진보주의자는,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매사를 수학적으로 사고하기 좋아하는 진보주의 안에선 노선에 따른 구분도 새로 생겨나는 일이 잦다. 근데 어떤 종류의 '이즘'에는 별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 이렇게 마이너리티 리포트 안에서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는 광경이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보수'라고 하면, 그 사람은 현재의 사회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그닥 느끼지 못하는 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사회 안정'과 법치를 부르짖는다. 다만 보수주의자라면 기왕에 (정치)권력을 이미 쥐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기득권을 더 오래토록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진보주의자는 이념으로 뭉치고, 보수주의자는 이익으로 뭉친다'고 한, 움베르토 에코의 말은 의미가 있다. 사실 그 말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 어떤 쪽이 (도덕적으로)우월하다는 설명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영악하다. 그들은 체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누구보다 명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합집산도 빠르다. 대중을 상대로 한 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아젠다를 구성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아니, 어쩌면 그런 작업 자체가 좀 쉬울 수도 있겠다. 그들은 (정치)권력과 함께 미디어도 쥐고 있으니. 때로는, 미디어가 권력 자체가 되기도 할 정도.
그러면 남은 건, 싸움이다. 안타까운 것은, 다수 대중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의 투쟁의 장(?)에서 애꿎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피해란 것이 반드시 개인의 경제적, 혹은 육체적 피해일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에게 그닥 어울리지 않는(?) 그 어떤 이즘을 체득하고, 그것이 자신의 이상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피해는 피해다. 일종의 정신적 피해...
지금까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냐고?
바로 '진격의 거인'을 보고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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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시작된 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던 결과가 나왔다. 리그에서야 강팀이라곤 하지만 리그 밖에서까지 그런 소리를 듣기는 좀 민망했던 스위스의 FC바젤이, 빅이어를 이미 4번이나 따먹은 바 있는 전통의 명문 바이에른뮌헨을 1:0으로 꺾었던 것.
그리고 바로 그 FC바젤에는 한국인 박주호 선수가 뛰고 있다. 바이에른뮌헨과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와 풀타임을 뛰면서 두어 번 정도 킬패스를 넣기도 했고, 위 이미지에서 보는 것처럼 로벤을 꽁꽁 묶으면서 활약을 했다. 특히 후반전이었나, 박주호가 전방으로 넣어준 패스가 슈팅으로 이어졌는데 골대를 땡~하고 맞추고 나온 장면은 정말 아쉬웠다.
박주호의 현재 포지션은 왼쪽 풀백. 야구에선 '왼손잡이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축구에서도 거의 그에 못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왼쪽 와이드맨(왼쪽 사이드라인에서 윙포워드부터 풀백까지 모두 소화가 가능한 선수)은 꽤 좋은 옵션이다. 특히 전반적인 게임의 스피드와 공수 전환이 빨라진 현대 축구에선 이른바 볼란테라고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와 함께 왼쪽 풀백은 희소성이 높다. 왜? 왼발잡이가 그만큼 적기 때문에.
오른발잡이이지만 왼쪽 풀백으로 뛰고 있는 박주호를 보니까, 지금은 캐나다의 밴쿠버로 가 있는 이영표가 국대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을 무렵에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 때 한국 축구는 '전세계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뻔했다!
알다시피 이영표는 오른발잡이이고, 선수 생활 거의 내내 왼쪽 사이드에서 뛰었다(그리고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왼쪽 사이드가 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해서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등의 외국인 감독은 그를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했고, 왼쪽 풀백 자리엔 원래부터 왼발잡이였던 김동진이나 김치우 등을 기용했다.
당연히 '오른발잡이는 오른쪽 사이드에서 뛰면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것이 편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을 텐데, 아니 당사자가 왼쪽이 편하다고 얘기하는데 굳이 오른쪽에 세울 이유는 없지 않았나. 게다가 이영표라는 존재가 대표팀 내에서 갖는 위상도 결코 적지 않았는데.
바로 그런 이유로, 축구계 일각에선 '이영표를 편한 왼쪽 자리에 두고, 이전에 왼쪽에서 뛰었던 선수를 오른쪽으로 돌려서 기용하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즉, '오른발잡이가 왼쪽에서, 왼발잡이가 오른쪽에서' 뛰는, 정말로 전세계 축구 역사를 탈탈 털면서 찾아봐도 보기 힘든, 엄청난 포지션 파괴(?)가 행해질 뻔했다는 것!
그런데 뭐, 그게 현실이 되진 않았고...
박주호는 이미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에선 에이스였고, A대표팀에서도 몇 차례 소집된 적이 있긴 하다. 다만 지금의 A대표팀은 이른바 비상 시국이기 때문에 멀리서 뛰고 있는 박주호를 굳이 점검차 불러들일 절박한 이유는 없어 보이고, 지난 토요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좋은 몸놀림을 보였던 한상운이나 김치우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왼쪽 풀백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2014 브라질월드컵 출전이 확정되면, 그 때나 A대표팀에 소집되면서 점검을 받을 수 있을 듯.
그렇게 되면, 그리고 박주호가 오른발잡이로서 왼쪽에서 정말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다면... 정말 다시 한번 세계 축구계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ㅋㅋㅋ
로버트 해리스의 아크엔젤을 보니, 자연스럽게 10년 전쯤엔가 읽었던 알란 폴섬의 '모레'가 떠오른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던;; 바로 그 소설. 거기에선 순도 100%짜리 아리안족 청년의 몸에다가 '붙일' 냉동시킨 히틀러의 머리가 등장했는데, 이번엔 45년 동안 북러시아의 동토 속에 꽁꽁 숨어있던 스탈린의 아들이 등장한다.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히틀러가 아니라 스탈린입니다.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맞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스탈린이 히틀러보다 더 미쳤기 때문에? 맞긴 하지만 그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히틀러가 그저 1회용에 불과했다면, 스탈린은 현재도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양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고 모두 패전했던 독일이란 나라가 그 잿더미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오늘 유럽의 큰손, 세계의 큰손이 되지만 않았다면 히틀러가 1회용 반창고로 치부되진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과거의 소비에트연방은 냉전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이리저리 찢겼고, 그것의 콤플렉스는 지금 러시아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 러시아엔 '스탈린'이 필요하다...는 것이 작품 속 파시스트의 이야기.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스탈린도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파시스트 독재자였고, (당연히)엄청난 폭정을 휘둘렀으며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많은 대중문화 작품에서 히틀러가 고대의 시체 소환술 같은 여러 가지 비학(秘學)에 심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후대에 히틀러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 다소 윤색된 부분도 많다. 스탈린에 관한 이야기에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은 있겠지만, 개가 짖는 소리(한마디로 개소리;;)만 나오는 레코드판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춤을 췄다는 이야기 같은 건... 정상인이라면 정말이지 믿기 힘든 것.
같은 팩션이라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같은 아동문학;;에 비하면 '아크엔젤'은 좀 무게감이 느껴지는 편이다. 마침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소리를 들어 마땅할 MB정권의 4년이 지났고, 올해는 대선이 있다. 이런 와중에, 마찬가지로 파시스트에 다름 아니었던 박정희가 롤모델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말하자면,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 묵직한 시사 교양 프로라면, 로버트 해리스의 '아크엔젤'은 아주 가벼운 주말 예능 버전이라고나 할까? 지극히 대중적인 스릴러물이면서도 나름의 풍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오늘(2월23일) 구글의 메인 페이지. 뭔가 특별한 날이면 구글이 메인 페이지의 디자인을 요런 식으로, 귀엽게(?) 꾸미는 거야 뭐 이젠 유명한데... 커서를 살짝 갖다 대니 오늘은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 선생의 탄생 105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한국 근대 문학 작품 중 하나인 바로 그 작품.
내가 메밀꽃 필 무렵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다. 우선 당대의 생활상을 덤덤하게 그려낸 것. 전국의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 인생이야 그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것은 없겠지만 그 담백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국 문학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시각적 심상에 천착했다는 것. 주인공(?)인 허생원과 동이가 나귀를 앞세우고는 메밀밭 두렁을 걸어가는 장면은... 정말 바로 눈앞에 그 장면이 펼쳐지는 듯했다(동시에, 한국 근대 문학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가 탁월한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B사감과 러브레터' 같은 작품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품들).
아무튼 그러면서도 이야기 내내 위트가 넘치고, 현대의 대중문학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나름의 열린 결말(?)을 채택한 모던함;; 등등의 요소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니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꼬.
그리고 한 5년 전인가, 평창에 있는 이효석문학관도 갔던 적이 있다(위 사진 출처는 공식 홈페이지 http://www.hyoseok.org). 근데 하필이면 그 때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주변에 꾸며진 산책로를 다 둘러보진 못했는데, 위 사진을 보니까 산책로를 포함해서 아무튼 주변을 아주 예쁘게 꾸며놓은 모양이다. 다시 가고 싶네.
중고딩 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한국의 시나 소설 같은 작품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상은 과거의 아픔;; 때문인지 재미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아무튼 졸립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이라고 치부하기 쉬운데,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꼭 찾아서 보시라. 동네 어지간한 시립도서관에는 한두 권 비치되어 있을 터이니.
오늘 아침부터, 평소 즐겨보던 네이버와 다음 웹툰 하단에 위의 이미지가 붙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네이버에서 총 13편, 다음에서 총 5편과 기타 웹툰에 대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하고 이에 관한 공문을 각 포털에 보냈다고 한다(자세한 사항은 노컷 웹툰 블로그 http://nocut_toon.blog.me/ 에서).
딱 한 마디 하자.
이 빌어 처먹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따라지들아.
제발 나대지좀 마라. 안 그래도 피곤한 일 많다...
폭력적인 내용을 다룬 만화나 게임이, 실제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의 정신세계에 '특정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학적인 검증도 제대로 나온 것 하나 없는 게 사실. 지금 저들은 그저 '때려잡을' 유형의 대상이 필요한 것 뿐.
실제로 이번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별 쓸 데도 없는 따라지들이 이름은 왜 이리 기노)로부터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다음 웹툰 '전설의 주먹'을 보자. 철없던 시절 본의 아니게 '큰일'을 저지른 등장인물들이 남은 평생을 그 아픈 기억을 보듬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게다가 그 중 한 명은 자살까지 한다). 아이들한테 폭력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허구헌날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부정부패와 비리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꼰대들의 곤조가 청소년에게 백 배, 천 배 더 유해하니 그냥 뉴스에다 통째로 19금을 붙여버리자. 그러면 모든 꼰대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지?
존 르 카레가 이 작품을 쓴 게 1963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50년 전;;; 그런 만큼 첩보소설, 스파이소설의 전범(Canon)이라고 할 수 있는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무척이나 고풍스럽고, 때로는 순진하기까지 하다. 하드보일드가 대세인 요즘의 대중문학 상황을 보니 그런 느낌은 특히 더하다.
스파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법정 스릴러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책도 얇고 전체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 대신 여러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막판의 청문회(라고 쓰고 사실상의 법정 공방전이라고 읽는다)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고, 스릴이 넘친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함께, 친구에게 빌렸는데 아무래도 얇은 책을 먼저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요걸 먼저 봤다. 그러면 이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남았는데. 영화를 먼저 볼까 원작 소설을 먼저 볼까? 원작 소설은 꽤나 두꺼워서 완독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그러다가 영화는 간판 내릴 것 같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요 작품은 진작에 영화로 나온 적이 있다. 왕년의 대배우 리처드 버튼이 타이틀롤을 맡았고 소설이 나오고서 딱 2년 후인 1963년에 영화가 개봉을 했는데, 조금 검색을 해보니 영화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긴 모양. 이 영화도 궁금하네.
다음(Daum) 뉴스 섹션에 들어가서, 미우라 카즈요시를 보게 됐다. 올해 나이 45살인데도 여전히 현역... 게다가 작년엔 선발/교체 포함해서 리그에서 30경기 가량 나왔고 올해도 연봉은 전성기에 비하면 훨씬 적지만 팀과 재계약을 했다고. 이젠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그 옛날엔 골을 넣고서 뒤뚱거리는 '카즈 댄스'를 추는 장면이 그렇게 꼴불견일 수 없었지만;;; 나이 먹고 보니 멋지다. 인정.
그러고 보니 확실히 옛날의 축구 대표팀 한일전은 정말로 재미있는 경기가 많았다. 요즘에야 영 맹탕같지만...
일본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은, 미우라가 전성기 시절(대략 90년대 초중반?)... 양 어깨에 흰색 불꽃이 타올랐던 바로 그 유니폼이 제일 멋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진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어서 그 이전 세대 유니폼 사진으로 대체(참고로 그 유니폼은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 미치코 코시노가 디자인한 것이다).
옛날의 축구 한일전이 재미있었던 건, 일본 선수들의 캐릭터도 참 명확했다는 것. 일본에선 '킹 카즈'로 통했던(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냥 좆밥 ㅋㅋ) 미우라를 비롯해서, '그라운드의 아티스트' 나카다 히데토시, '아시아의 벽' 이하라, 마라톤 선수 출신의 '폭풍질주' 소마, '사무라이' 나카야마 마사시, 브라질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라모스, 꽃미남;; 기타자와 등등. ㅋㅋㅋ 그들보다 조금 후배 세대에선 신예 조 쇼지가 있었고 K리그에서도 잠시 뛰었던 마에조노가 있었지.
물론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별명도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삼손' 김주성을 비롯해서 '황새' 황선홍, '탈 아시아급 리베로' 홍명보, '반칙왕' 최영일(ㅋㅋㅋ), '적토마' 고정운, '왼발의 달인' 하석주, 만능 플레이어였던 '유비' 유상철 등등... 아! 그리고 안정환도.
공중파나, 아니면 케이블 채널에서라도 옛날의 축구 한일전 관련한 다큐나 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원래부터 첩보물, 스파이 이야기 등등을 좋아하셨던 칠순이 넘은 아버지께 이 소설을 권해드렸다. 책을 보시는 도중에 말씀하시길 '이 작가가 참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그래서 나는 말했다. '지금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작가들 중에 글재주로만 따지면... 아마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걸요?'
국내에 출간된 프레더릭 포사이스의 모든 소설을 다 본 건 아니지만(코마로프 파일이나 신의 주먹 등은 못봤다. 근데 이런 것들은 이제 절판이 돼서 구하기도 힘들고...;;;), 그의 최근작 코브라가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의견에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스케일도 정말 굉장하다!
바로 전작인 아프간, 그리고 그 바로 전작인 어벤저. 어벤저에 나왔던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 고집불통에 외골수지만 능력은 탁월한 전직 CIA 첩보원 폴 데브루, 그리고 프리랜서 현상금 사냥꾼인 베트남전의 베테랑 칼 덱스터 등등. 어벤저에선 이 둘이 서로 상대편에 서 있지만 여기 코브라에선 손을 잡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데브루가 덱스터를 '고용'하는 것.
책 표지에 '냉혹한 코브라와 세계 최대 코카인 카르텔의 마약 전쟁'이라는 카피가 있는데 이게 바로 이야기의 내용을 대신한다.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부여 받고 엄청난 자금도 받아서 마약 카르텔 퇴치에 나서는 데브루. 바로 그의 별명이자 이 엄청난 스케일의 작전명이 바로 코브라.
말이 필요 없다.
필독!
모든 이야기는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랜 굶주림으로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아이. 그리고 마치 아이의 목숨을 노리는 듯한 독수리의 매서운 눈매. 이 사진은 살아 생전 보도사진가 그룹인 '뱅뱅클럽'의 일원이었던 케빈 카터의 작품이고, 199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속했던 그룹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뱅뱅클럽'을 어제 봤다.
뱅뱅클럽이라는, 발랄한(?) 이름의 그룹은 당연히 실재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가벼운 제목과는 달리 뭔가 묵직한 주제의식을 전달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사실인데 영화는 마치 다큐처럼 그냥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하기만 해서 '영화적'으로만 놓고 봤을 땐 약간 심심. 그래도 평소에는 접할래야 접할 수가 없는 보도 전문 사진가(혹은 종군기자?)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왔다. 그리고 왕년에는 나름 꽃돌이 소리도 좀 들었던 라이언 필립이 꽤 늙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영화 포스터에서 3번째의 배우가 바로 케빈 카터 역을 연기한 배우인데, 실제로 케빈 카터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위의 수단 어린이 사진이 1994년 워싱턴포스트 1면에 실리고 퓰리처상을 받자, 케빈 카터에게는 절묘한 순간을 포착했다는 찬사와 함께, 카메라를 집어던지고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난도 쏟아진다. 바로 그런 비난 때문에 케빈 카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더 자세한 이야기들이 알려지면서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게 밝혀진다. 실제로 사진 속 아이의 바로 옆에는 엄마가 있었으며(아이를 안고 가다가 잠시 땅에 내려놓은 상태였다고), 독수리는 그저 잠시 땅에 내려와서 앉았다가 몇 초 후에 훌쩍 날아가버렸다고 한다(이는 일본인 저널리스트이자 역시 보도사진가인 후지와라 아키오의 취재에 의해 알려진 사실이다. 후지와라 아키오는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를 발간했고, 국내에도 나와있다).
물론 남아공 출신인 케빈 카터가 수단으로 가서 위의 독수리와 소녀 사진을 찍기 전에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참상을 매일매일 접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대마초나 마리화나 같은 것에 의존해야만 했고, 말년에는 심지어 마약에도 손을 댔으며 뱅뱅클럽의 일원이었던 동료가 현장에서 촬영 도중 유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이긴 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에게 쏟아졌던 일부의 비난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보도사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생각이 나는 사진들이 몇 장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사진작가인 스티브 맥커리의 작품이다. 사진 속 소녀의 저 신비롭고도 불안한 눈빛은, 구구절절한 장문의 글이나 유명 정치인의 일장연설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스티브 맥커리는 위의 사진을 촬영하고 약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찾아 사진 속 소녀(물론 다시 만난 그녀는 이미 여러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를 다시 만난다.
3년 전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스티브 맥커리 사진전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 갤러리 한켠에선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찾은 스티브 맥커리를 촬영한 짤막한 다큐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 다큐를 보니 여러 아줌마들이 사진 속 소녀가 서로 자기라고 우기는 코믹한 상황이 나오기도.
그리고 이 사진도 생각이 난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라고 하는, 체 게바라의 사진을 찍은 이는 쿠바의 사진작가인 알베르토 코르다. 그는 약간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젊은 시절에는 굉장히 세련되고 극단적으로 연출된 광고 사진을 촬영해서 돈을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에 감동(?)을 받고는 아예 피델, 그리고 체와 거의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필름에 담았다(체 게바라 평전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진은 모두 그의 작품이고, 심지어 코르다는 그의 아들 이름을 '피델'로 짓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생생한 현장을 담은 보도사진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카파이즘의 아버지이자 보도사진가 그룹인 매그넘의 아버지이기도 한 로버트 카파의 이 유명한 사진도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전(?)한 로버트 카파는, 위의 공화국 병사가 총탄에 숨을 거두는 순간의 이 사진을 촬영한 바로 직후에 지뢰를 밟아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역시나 보도사진, 그리고 매그넘을 이야기하면서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을 빼놓을 수는 없다. 로버트 카파와 함께 매그넘을 만든 그는 '찰나의 사진가'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졌는데, 위의 '생 라자르역 뒤에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위의 작품처럼 잔잔하면서도 약간은 코믹한 순간을 잘 잡아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그의 작품 면면을 보면 뭔가 '살롱스러운' 느낌을 많이 받긴 하지만 원래 그도 보도사진 전문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미술 사조로 치면, 요렇게 표현주의적으로 다소 연출된 모습을 많이 촬영한 으젠느 앗제도 사진작가로서 좋아하는 편. 사실 그의 작품은 알게 모르게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ㅎㅎㅎ
아~ 쓰다 보니 사진전 가고 싶다. 요즘 괜찮은 사진전 어디 없나.
지금 진중권을 보면, 뭔가 좌충우돌하는 약간 찌질한-_-인간 정도로 보일 수 있겠는데 그가 저술한 서양미술사 두 권(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을 읽고 나면 이 양반이 하는 짓이 좀 비호감이어서 그렇지 머리에 든 건 참 버라이어티한 양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학창시절에 미술사, 특히 서양미술사에 대해선 거의 예외 없이 '통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결과물을 달달 외운 적이 있다. 물론 수천 년을 아우르는 서양 미술의 역사에 관한 지식을, 효율적(?)으로 머릿속에 채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터.
하긴 딱히 미술이나 미학 등을 전공할 일이 없는 이라면, 칸딘스키는 색채에 관해 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과 논쟁을 벌였는지,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의 대량학살이라는 두려움이 당대의 미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마르셀 뒤샹은 왜 양변기를 갖다 놓고 미술작품이라고 우겼는지(?), 말레비치는 왜 그저 평범한 검정색 사각형을 미술작품이라고 우겼는지;; 등에 관해 차분하게 곱씹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고전예술 편이 모더니즘 편보다는 다소 이해가 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르네상스 이전의 서양미술은 제재로 삼았던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모더니즘 편으로 와서는 아방가르드라는 사조가 생각보다 꽤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왔던 부분.
그리고 우연찮게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 오마이뉴스의 오마이TV에서는 '저자와의 대화'라는 꼭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특정 책의 저자들을 초빙해서 강의를 듣는 형식이다. 이전에는 이 저자와의 대화 꼭지에서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 강의를 시청한 적이 있는데, 친구 이야기로는 진중권도 서양미술사 강의로 여기에 출연한 적이 있다고.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영상이 있어서 링크.

